철도노동조합연맹의 감원반대 투쟁은 2년 뒤인 1958년 9월 22일 교통부 장관이 디젤기관차 도입을 이유로 감원 대상자 선정 요강에 따라 10월말까지 2,056명의 감원계획을 발표하자 재발하였다.
1958년 초 교통부는 철도 현장에서 ‘고령자, 색맹자, 징계처분자, 공상자, 성적불량자’에 대한 해고계획을 세워 1차로 1,700명의 감원을 단행했다. 철도노동조합연맹은 이들에 대해 2개월치 퇴직위로금을 지급하는 수준에서 해고에 동의하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1차 감원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한 철도연맹은 2차 감원 발표가 있자 진정, 청원, 엄포, 쟁의 위협으로 반대 활동을 전개했다. 철도연맹은 감원이 현장 상황을 무시한 것이라며 △ 철도 현장은 인원 부족으로 전체인원의 50%에 해당하는 인원이 시간외초과근무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인원을 보충해야 하며 △ 상시 철야근무자에는 노동법규를 위반하여 주간 휴일도 주지 않고 계속 근무를 시키고 있는 실정이니 1,500여 명의 부족 인원부터 우선 보충해야 하고 △ 디첼기관차 도입으로 인한 연초의 감원 이후 사망, 기타 퇴직자에 대한 충분한 보충이 없어 인원 부족으로 인한 업무량이 점차 가중되고 있으니 오히려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리고 △ 추가경정예산에 금년도 감원계획이 없었다는 점 △ 제2차 디젤기관차 도입이 신년 초에 실현되면 불가피하게 그에 대한 감원이 예상되므로 그때까지 일단 유보함이 타당하며 △교통부는 사업관청으로 합리적인 운영 방책을 수립하여 자립 채산에 의한 운영으로 감원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재고를 요청했다.
그러나 파업 결의 등 감원을 막겠다 했던 철도노동조합연맹은 결국 “이번의 감원은 처우개선이 수반되는 것인 만큼 무조건의 반대만으로 일관할 수 없었으며 더우기 정부의 방침이 부득이한 사유로 변경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 아래 내용의 중앙운영위원회의(10.10.) 결의로 요구를 일부 수정하고 감원 방침을 수용했다.
정부는 발표한 방침대로 감원을 단행했다. 다만, 구체적으로는 조합 측이 제시한 요구를 받아들여서 현장직 6%, 관리직(사무계통 또는 비기술부문) 15%를 감원했고, 국·창은 동일 비율로 감원했다. 최종 감원 인원은 1,090명이었다.
조합원 고용보장이 노동조합 활동의 최우선의 과제라는 점에서 감원 규모를 줄이고 대상자 선정 기준을 합의했다 하더라도 철도노동조합연맹은 대규모 해고를 막지 못했다. 성명서 발표, 국회 청원서 제출, 파업 결의와 엄포가 이어졌지만 결국 청원식 노조 활동을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이에 따라 조합원들은 단체행동 등 집단적 해결책을 찾기를 포기하고 대신 동료 노동자들보다 한발 먼저 디젤 운행기술을 배울 기회를 찾으며 개별적 생존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 참고자료
- 전국철도노동조합,『철노 50년사』, 1997.
- 김낙중, 『한국노동운동사 - 해방후 편』, 청사, 1982.
- 김준, 『1950년대 철도노조의 조직과 활동 : 파벌투쟁 및 정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산업노동연구 제13권 제2호, 2007.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조선일보』 1953.9.1
- 염홍길, 「철마와 더부러 일평생-모든 문제해결을 생활보장에서」, 철도창설 제59주년 기념좌담회, 『철노』1958.9.18.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1』, 한내,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