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제정 직후인 1953년 10월, 철도노동조합연맹의 배타적 교섭대표권을 인정하는 협약이 교통부장관과 위원장 사이에 체결되었고 철도노동조합연맹은 정부와 교섭할 권한을 보장받았다. 철도노동조합연맹은 이에 기초하여 1954년 11월 교통부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제의했으며, 1955년 1월 철도노동조합연맹과 교통부를 대표하는 각 3인의 교섭대표가 선정되어 첫 교섭이 시작되었다. 1955년 7월 22일 경주 경주극장에서 열린 철도노동조합연맹 제8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단체협약안을 승인받은 직후 철도 노사는 7월 8차 교섭에서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같은 해 8월 18일 교통부 회의실에서 사용자 대표 이종림 교통부장관과 노조 대표 김주홍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인식을 갖고 한국 최초의 ‘국유철도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전문 48조로 되어 있는 이 협약은 비교적 단순하며 노동관계법의 내용을 상회하는 내용은 없었고 협약의 유효기간은 1년으로 규정되었으며 내용 변경 없이 1960년까지 매년 갱신되었다. 1947년에 설립되어 1953년까지 단체교섭 대표권이 노동조합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표하는 주체로 인정되는 계기였다. 또한 중앙정부와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국가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법률적·행정적으로 지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편 단체협약은 교섭없이 매년 같은 내용이 갱신되었고 임금·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은 노동협의회로 이관되어 건의와 협의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노동관계법 조항 수준에 머무른 단체협약서에는 노조 활동에 대한 조항(전임, 조합활동 보장, 조합원 교육, 교섭 등)이 미약하고 실질적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조합원의 조합활동은 소속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는 이후 단체협약을 통해 철도노동조합연맹을 노동자의 대표조직으로 실질적으로 인정했다기 보다는 철도산업 정책을 다루고 현안 문제를 파악, 대응하기 위한 장치로 교섭(협의)과 단체협약을 활용했다. 1991년까지 단체교섭을 위한 철도노동조합의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의무가 없었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청취’하면 그만이었다. 1991년 단체협상에서 "단체협약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에 철도청은 응해야 한다."(제57조)는 조항에 합의하게 되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실질적인 단체행동권을 인정한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