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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5년 단체협약 체결과 국유철도노동협의회

    철도노동조합연맹은 한국전쟁 종료 직후인 1953년 10월 19일, 당시 교통부장관을 사용자로 하는 단체교섭권 협정에 따라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시작해, 1954년 7월 16일 8차 교섭(협의회)에서 단체협약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 이후 1955년 7월 22일 8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단체협약안을 승인받고 1955년 8월 18일 교통부 회의실에서 사용자 대표 이종림 교통부장관과 노조 대표 김주홍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인식을 치렀다. 최초로 행정부를 사용자로 한, 전문과 48개 조항으로 구성된 국유철도 단체협약이 체결된 것이다.

    단체협약 체결 이후 협약 갱신을 위한 노조법에 따른 단체교섭은 진행되지 않았고, 국유철도노동협의회(오늘날의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 고용, 복지, 안전 및 보건 등의 의제를 철도청과 논의했으나 청원, 협의 수준에 머물렀다.

    목차
    처음으로
    1955년 한국 최초의 ‘국유철도단체협약’
    ‘국유철도노동협의회’ 구성

    1. 1955년 한국 최초의 ‘국유철도단체협약’

    노동법 제정 직후인 1953년 10월, 철도노동조합연맹의 배타적 교섭대표권을 인정하는 협약이 교통부장관과 위원장 사이에 체결되었고 철도노동조합연맹은 정부와 교섭할 권한을 보장받았다. 철도노동조합연맹은 이에 기초하여 1954년 11월 교통부에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제의했으며, 1955년 1월 철도노동조합연맹과 교통부를 대표하는 각 3인의 교섭대표가 선정되어 첫 교섭이 시작되었다. 1955년 7월 22일 경주 경주극장에서 열린 철도노동조합연맹 제8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단체협약안을 승인받은 직후 철도 노사는 7월 8차 교섭에서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같은 해 8월 18일 교통부 회의실에서 사용자 대표 이종림 교통부장관과 노조 대표 김주홍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조인식을 갖고 한국 최초의 ‘국유철도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전문 48조로 되어 있는 이 협약은 비교적 단순하며 노동관계법의 내용을 상회하는 내용은 없었고 협약의 유효기간은 1년으로 규정되었으며 내용 변경 없이 1960년까지 매년 갱신되었다. 1947년에 설립되어 1953년까지 단체교섭 대표권이 노동조합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본다면,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대표하는 주체로 인정되는 계기였다. 또한 중앙정부와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국가의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법률적·행정적으로 지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편 단체협약은 교섭없이 매년 같은 내용이 갱신되었고 임금·노동조건에 대한 교섭은 노동협의회로 이관되어 건의와 협의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또한 노동관계법 조항 수준에 머무른 단체협약서에는 노조 활동에 대한 조항(전임, 조합활동 보장, 조합원 교육, 교섭 등)이 미약하고 실질적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조합원의 조합활동은 소속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는 이후 단체협약을 통해 철도노동조합연맹을 노동자의 대표조직으로 실질적으로 인정했다기 보다는 철도산업 정책을 다루고 현안 문제를 파악, 대응하기 위한 장치로 교섭(협의)과 단체협약을 활용했다. 1991년까지 단체교섭을 위한 철도노동조합의 요구에 반드시 응해야 하는 의무가 없었던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청취’하면 그만이었다. 1991년 단체협상에서 "단체협약에 대한 노동조합의 요구에 철도청은 응해야 한다."(제57조)는 조항에 합의하게 되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실질적인 단체행동권을 인정한 시기와 때를 같이 한다.

    2. ‘국유철도노동협의회’ 구성

    정부와 운수부연맹은 국유철도 단체협약에서 철도 공무원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및 단체협약의 구체적 실행을 협의하기 위한 실무협의회, 오늘날의 철도중앙노사협의회의 기능과 유사한 ‘국유철도노동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국유철도노동협의회(노동협의회)는 1956년 1월 첫 회의를 가진 이후, 1960년 2월까지 약 4년여 동안 총 23회의 회의를 했다. 노동협의회의 안건은 노동자들의 임금, 고용, 복지, 안전 및 보건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있었다. 노동협의회는 현재의 단체교섭과 단체협약 갱신을 대체하였다. 1956년 11월에 전개된 노동협의회의 구체적인 의제를 예로 들면, 철도 공무원노동자들의 감원 문제, 설비분야의 목공도구수당 문제, 보선반원들의 숙직수당 문제, 초과근무수당 문제, 노조 전임자들의 신분 문제 등이 이 협의회에서 논의되었다.

    노동협의회는 1968년에 노사협의회로 명칭 변경되어 1980년대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1975년부터 1978년까지 노사협의회의 협정서는 1년에 1회만 체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노사협의회는 활발하게 열리지 못했다.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음에도 노동협의회는 한계가 명확했다. 철도청은 노동협의회든 노사협의회든 관련 협의기구를 활용해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분노는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쳐 순화되었고 노동협의회를 통해 철도노동조합연맹과 정부 간의 정치적 관계는 더 강화되었다.

    ※ 참고자료

    - 김준, 『1950년대 철도노조의 조직과 활동 : 파벌투쟁 및 정부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산업노동연구 제13권 제2호, 2007.
    - 전국철도노동조합,『철노 50년사』, 1997.
    - 전국철도노동조합, 『철노』, 1955.2.5. ; 1956.11.9.
    - 국토교통부 외, 『알기 쉬운 신한국철도사』, 2019.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1』,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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