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조의 민주화, 민영화 저지, 인력감축 구조조정 저지, 단체협약 사수를 위한 투쟁에는 희생이 따랐다. 철도노동조합의 활동가들은 1988년부터 현재까지 파업과 현장투쟁을 이끌면서 징계, 구속, 수배, 해고 등의 탄압에 노출되었고 이를 회피하지 않았다.
1988년과 1994년 파업 투쟁 이후 철도 해고자들은 1994년 ‘철도해고노동자회’를 결성해 노조 민주화와 원직복직 투쟁을 실천했다. 특히 철옹성과 다름없던 60년 어용 철도노조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2001년 민주노조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다.
해고자들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2001년 노사정위원회 해고자 복직 합의를 촉구하며 노사정위원회 점거농성, 단식농성을 진행하며 복직을 촉구하였다.
2003년 철도노조가 4·20 노정합의를 통해 41명의 해고자에 대한 복직 합의를 이끌어냈고 해고자들은 특단협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노사정위원회와 철도청사 농성과 집회를 이어간 끝에 연말 특별채용 방식으로 30명이 복직되었다.
2003년 철도 구조개혁 시기 노사정 합의 파기와 일방적 철도공사법 입법 저지를 위한 철도노조의 6·28 총파업 결과 46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철도노조 위원장을 비롯한 파업 지도부 대부분이 해고를 당했고 해고자들은 원상회복과 원직복직을 위한 조직적 투쟁을 위해 같은 해 연말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철해투)’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본격적인 해고 투쟁을 전개했다.
2004년 이후 철해투는 서울역사와 본사 앞 장기 농성, 단식농성을 매해 벌이면서 해고자 복직을 촉구했고 철도노조 집행부의 파업과 주요 투쟁을 지원하고 때로는 집행부의 일원으로 철도노조 운동에 헌신했다.
해고자들의 구호와 복직의 힘은 현장 조합원들에게 있다는 판단 아래 철해투는 주기적 현장 순회와 간담회를 통해 조합원들을 만났으며 2007년, 2013년에는 철해투 도보행진을 통해 전국을 순회하며 당면한 민영화 구조조정 반대 투쟁과 해고자 복직의 의의를 선전했다.
철도노조 집행부도 매해 주요 사업목표와 임단협 투쟁 주요 요구로 ‘해고자 복직’을 걸고 교섭과 투쟁을 진행했다. 하지만 가시적인 복직 성과는 미미했다. 철도청과 철도공사는 2004년, 2006년, 2008년 노사합의를 통해 ‘해고자 복직에 대한 전향적 조치를 취하고 실무협의체를 꾸려 방안을 마련한다’고 합의해 왔으나 정부와 철도공사는 복직에 대한 의지와 계획이 전무했고 복직방안 논의는 공전되었다.
매해 진행되는 철도노조의 파업과 투쟁으로 인해 해고자는 오히려 늘어갔다. 2007년 당시 6·28 파업으로 인한 46명과 홍익매점 해고자 1명 총 47명, 2007~8년 현장 투쟁에 따른 4명, 2009년 단체협약 개악 저지 총파업에 따른 111명 해고자 발생 등 2012년 당시 해고자는 161명에 달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부당해고 구제를 통한 간헐적 복직 이외에는 해고자 복직이 이루어지지 않아 해고자들은 길게는 10년 이상의 해고 생활을 견뎌야 했다. 조합원들의 결의에 따라 해고자 구호를 통한 희생자 지원을 받았지만 기금 부족으로 해고자 전원을 100% 구제할 수 없었고 장기 해고 기간 육체적·정신적 피로와 경제적 손해가 누적되어갔다. 마침내 2011년에는 해고된 허광만 조합원이 죽음에 이르는 일까지 발생했다.
촛불항쟁으로 박근혜정권이 물러가고 문재인정권이 들어선 2017년에도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해고자는 98명에 달했다. 길게는 14년의 해고 기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에 철도노조와 철해투는 숙원 과제인 해고자 복직 투쟁을 종결해야 한다는 의지와 계획을 세우고 대응 교섭과 투쟁을 전면화했다.
철도노조는 노사교섭의 핵심 요구안으로 ‘해고자 복직과 원상회복’을 전면에 걸고 간부결의대회와 함께 총 3차례에 이르는 전국 조합원 결의대회를 개최하면서 정부와 철도공사를 압박했다. 철해투 천막농성 지원을 위해 지방본부별로 매일 순환하여 지부/지구별 농성장 지지방문이 진행되었다. 지부별 현수막 게시, 인증샷, 성명서 등의 실천활동을 통해 해고자 복직의 최우선적 해결을 조직내 이슈화했다. 또한 대선시기 후보자를 상대로 정책협약을 체결했고 문재인 후보는 철도 해고자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를 약속해 이후 복직 교섭에서 주요한 근거를 확보했다.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국정감사에서 해고자 복직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철해투는 현장 조합원들과 함께 해고자 복직의 전망을 공유하고 해결을 다짐하는 전국현장순회를 6월 12일부터 28일까지 진행했다. 전국 현장순회는 철해투 회원을 2개조로 나누어 매일 20여 명의 해고자들이 참여해 진행되었다. 전국 현장순회 후 철해투는 9월 5일 임시총회를 개최해 철도노조의 해고자 복직 협의 내용을 보고받고 대전 본사 앞 끝장 투쟁 농성을 결정해 철도노조의 1차 조합원 결의대회가 개최된 9월 12일부터 본사 앞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천막농성은 복직 합의가 이루어진 2월 8일까지 150일간 진행되었다.
한편 철도공사와 해고자 복직추진에 합의하고 해고자복직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 복직방안을 논의하려 했지만 박근혜정권 임명자인 홍순만 사장의 교섭해태와 거부로 인해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오히려 2016년 성과연봉제 반대 합법파업에 대해 대규모 징계를 추진하자 철도노조는 철도 적폐 청산을 선언하고 사장 퇴진운동에 돌입했다. 사장 퇴진 이후 철도노조는 신임 사장을 대상으로 철도노조의 주요 현안 의제와 해고자 복직에 대한 사전 질의와 협의를 이어갔다.
마침내 2월 8일 철도공사 본사에서 신임 사장과 철도노조 대표자 간담회가 열려 ‘철도발전위원회 구성, 안전대책 및 근무여건 개선, 해고조합원 복직’에 합의하면서 98명 전원 복직에 대한 노사합의서가 작성되었다.
노사합의에도 불구하고 98명은 일시 일괄복직되지 못하고 2019년까지 순차적으로 복직되었다. 과정에서 철도공사의 합의 이행 지연으로 인해 2019년 재차 천막농성에 돌입하기도 했으나 8월 31일 3명의 해고자가 복직함으로 전원 복직이 완료되었다.
98명 전원에 대한 해고자복직 합의는 반공공·반노동 철도 정책에 맞선 저항과 노력이 정당했음을 확인시키는 조치였다. 즉각 일괄복직과 원상회복을 온전히 쟁취하지는 못하였지만 해고자들의 중단없는 투쟁, 조합원들의 지지와 엄호, 그리고 철도노동조합이 만들어낸 투쟁의 성과물이었다. 해고자 복직 이후에도 철도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철도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을 징계하고 탄압한 행위에 대하여 원상회복과 명예 회복을 위한 활동과 투쟁이 이어저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 참고자료
- 전국철도노동조합, 『2018년 사업보고』, 2019.
- 전국철도노동조합, 『2018년 정기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18.03.08.
- 노동자역사 한내, 『철도해고노동자회 자료 모음』, 문서번호 HNi66378, 2009.07.23.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3~2018년 사업보고.
-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2004~2019년 총회(정기·임시)자료』, 전국철도노동조합
- 철도노조민주화지원연대, 『창립 홍보 자료집』, 1996.01.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