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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철해투, 전국 순회 도보투쟁

    2003년 6·28 파업 해고자 47명(홍익매점본부 1명 포함)에 대한 해고가 5년차에 접어들자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이하 철해투)는 7월 2일~8월 8일까지 40일간의 ‘해고자복직·명예회복·원상회복을 위한 전국 순회 도보투쟁’을 진행했다.

    도보투쟁단은 경부선팀과 호남선팀으로 나누어 매일 15~30km를 걸으면서 행진 중 각 역사를 중심으로 조합원 선전, 간담회, 약식집회를 진행하였다. 39일간 진행한 전국 순회 도보투쟁에는 매일 해고자와 복직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60여 명이, 각 지역 구간에는 연인원 2,380명의 간부, 조합원들이 함께했다. 특히 철도노조의 11월 파업을 앞두고 도보투쟁은 현장 조직을 다지고 조합원을 단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순회 도보투쟁의 결과 19,000여 명의 조합원 서명과 함께 8월 10일 전국 조합원 2,500여 명이 모인 ‘해고자 원직복직과 원상회복 쟁취 철도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전국 도보순회투쟁이 이후에도 해고자 복직 논의가 진전이 없자 철해투는 10월 16일부터 20일간의 대전 철도공사 본사 앞 천막농성을 진행했다. 또한 철도노조 파업 철회 이후 11월 26일부터 현장탄압 중단과 해고자 복직 약속 이행을 위한 철도공사 앞 집회와 함께 무기한 천막농성에 재차 돌입했다.

    철해투는 2007년 당시 39일간의 전국순회 도보투쟁과 두 차례의 천막농성 등 수차례 집중 투쟁을 통해 원직복직·원상회복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대내외에 알려 나갔다. 또한 해고자 복직 요구 이외에 당면한 ‘구조조정 반대, KTX 해고승무원 복직, 임단협 요구 쟁취’를 함께 요구하며 철도노조 당면 투쟁을 함께했다. 그러나 어느 해보다 왕성한 활동과 투쟁을 벌였음에도 2007년 원직복직은 좌절되었고 이후에도 해고자 복직과 원상회복을 위한 철해투와 철도노조의 투쟁은 지속되었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경과
    결과와 의미

    1. 배경

    철도노조 민주화와 민영화 저지, 철도 구조개혁과정에서 철도공사법 입법 저지 파업으로 대량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특히 2003년 6·28 파업 당시 철도청은 97명을 해고하고 9,000여 명을 징계처분했다. 소송을 통한 부당해고 판정으로 51명이 원직복직했지만 47명의 해고자(홍익매점 해고자 1명 포함)가 남았고 집단 해고 5년 차인 2007년에도 이들에 대한 원직복직과 원상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6년 7월 25일 대법원은 6·28 파업에 대해 ‘국가가 파업이 일어나기 전 철도 민영화에 대해 노조와 충분히 논의하기로 합의하고도 이를 무시하고 철도개혁 정책을 계속 추진해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만큼 노조의 책임을 40%로 제한한다’고 판결해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고의 부당성 근거를 제시했다.

    철도노사는 이후 매년 수차례에 걸쳐 해고자 복직 관련 논의와 합의를 해 왔으나 복직이 이뤄지지 않았다.

    2004년 12월 2일 노사 합의를 통해 ‘철도구조개혁과정에서 발생한 철도 해고자에 대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결정이 있었으나 전향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고 2005년 철도공사 전환 시기에 노사간 해고자 복직과 원상회복방안에 대한 잠정합의가 이뤄졌지만 러시아유전 개발과 관련해 사장의 구속으로 무산되었다. 2006년 4월 1일에는 노사가 재차 ‘철도구조개혁 과정에서 발생한 해고자에 대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기 위해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한다’고 합의했으나 실무협의체는 철도공사의 복직 이행 의지가 보이지 않아 구성부터 공전되었다.

    결국 해고자 중 복직을 하지 못하고 철도공사 정년을 넘어 불명예 퇴직한 해고자가 발생했고 장기 해고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 정신적 육체적 피해가 가중되어 갔다.

    2007년의 경우 2003년 해고 이후 5년의 시간이 흘러 철도공사의 사규 중 직원채용의 결격사유인 징계경과기간(해임 3년, 파면 5년)을 넘어서 철도 해고자 복직에 절차상 문제도 해소되었다. 임금협상 과정에서 당시 이철 철도공사 사장은 “철도해고자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 올해(2007년) 안에 전원 복직시키겠다”는 발언을 하는 등 철도공사의 결단과 조치가 있다면 해고자 복직은 언제나 가능한 상황이었다.

    한편 철도 해고자 복직은 철도노조 민주화 이후 계속 진행되어 왔다. 2003년 4월 20일 단체교섭에서 철도노사는 88년, 94년 전기협 파업 관련 해고자들을 공무원 신분으로 복직시킨 바 있으며 또한 2005년과 2007년에도 2000년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과 2002년 2·25 파업 관련 해고자들을 노사합의로 복직시켰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철도공사의 사규 중 직원채용 결격사유(징계경과기간)에도 불구하고 노사간의 합의로 복직되었다.

    2. 경과

    • 철도노조가 2007년 첫 중앙노사협의회를 개최함. 노조는 △ ERP 중단 뒤 재협의 △ 정년퇴직 등에 따른 부족인력 충원 △ 해고자 46명 원직복직 △ 아산역 외주위탁 철회 △ KTX·새마을호 승무원 직접고용 △ 조정수당 지급을 요구함.

    • 철도노조가 오후 2시 대학로에서 3,0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구조조정 저지와 고용안정 쟁취 철도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함. 이날 결의대회에서 노조는 ‘구조조정·인력감축·ERP·신인사제도 분쇄, 해고자 원직복직 쟁취, KTX-새마을호승무원투쟁 승리, 외주위탁·비정규직 철폐, 한미FTA 분쇄’ 등의 주요 현안 투쟁에 대한 요구를 내걸음.

    • 이철 철도공사 사장과 엄길용 노조 위원장이 참석하는 대표교섭이 새 집행부가 출범한 지 3개월만에 처음으로 진행됨. 신형 전기기관차 1인 승무와 해고자 복직, KTX·새마을호 승무원 문제에 대해 논의했지만 의견 접근을 이루지 못함.

    • 2003년 파업으로 해고된 47명의 철도 해고노동자들이 문집을 펴냄. 제목은 『47, 그들이 온다』(도서출판 갈무리)

    • 철도노조가 1988년 기관사 파업, 1994년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파업때 해고됐다가 17년 만에, 10년 만에 복직해 퇴임하는 김운철 조합원(1994년 파면), 이종두 조합원(1994년 파면), 이태균 조합원(1988년 파면)의 정년퇴임 기념행사를 염.

    • 철해투가 원직 복직을 촉구하며 이날부터 각각 부산과 목포를 출발해 8월 9일 서울역 도착을 목표로 원직 복직 쟁취를 위한 전국순회 도보 투쟁에 돌입함.

    • 철도노조, 2분기 마지막 중앙노사협의회를 열어 KTX·새마을 승무원 문제를 포함해 인력충원과 구조조정, 해고자 복직, ERP 운영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의견을 나눴지만,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함.

    • 철도노조가 12∼13일 충북 충주리조트에서 ‘2007년 임단협·특단협 승리를 위한 제1차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해 특단협 1호 요구안으로 ‘해고자 원상회복과 원직복직’을 결정함.

    • 철도노조가 대전역 광장에서 조합원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철도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함. 이날 결의대회에서 노조는 △ 해고자 원직복직 △ KTX·새마을호 승무원 직접 고용 △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와 신인사제도 철회 △ 성과주의 임금체계 반대 등을 요구함.

    • 철도노조가 전국 지부장회의를 열어 ‘임금 및 특별단체협약 쟁취투쟁 세부방침(안)’을 논의하고 임금협상과 특별단체교섭이 결렬되면 10월 중순께에 전면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인다는 방침을 정함.

    • 철해투의 39일 도보행진이 이날 서울역에서 마무리됨. 이날 오전에 수색역을 출발한 도보투쟁단은 가좌와 신촌역을 거쳐 서울지역 현장순회를 끝으로 서울역광장에 도착함.

    • 철도노조가 전국에서 조합원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대전 철도공사 앞에서 철도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해고자 원직복직과 원상회복 쟁취’를 위해 총력투쟁에 나서기로 함. 한편 결의대회 중에 노조는 해고자 원직복직과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19.000여 조합원의 서명지를 철도공사에 전달함.

    • 철도노조, 기획예산처 앞에서 전국에서 모인 조합원 2,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임투 승리 및 특단협 쟁취를 위한 총력 결의대회’를 개최함.

    • 철도노조가 대의원 수련회와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임금협상 결렬과 특별단체협약 미진행에 따른 쟁의발생과 쟁의대책위원회 구성을 심의, 결의함.

    • 철도노조가, 파업동력 미비를 이유로 새벽 파업 돌입 30분을 앞두고 파업 유보를 선언함. 철도 노사는 핵심쟁점에 대해 어떤 합의문도 만들지 못하고 교섭을 중단함.

    • 철해투가 철도공사 서울사옥 앞에서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함.

    • 철도노조가 서울서부역에서 전국에서 모인 700여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해고자 원직복직, 노조탄압 분쇄’를 위한 철도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함. 집회 후에 ‘철도 해고자의 원직복직의 정당성’을 담은 대국민 선전물을 서울역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배포함.

    • 철도노조가 대전 철도공사 청사 앞에서 ‘단계적 보전 3% 및 해고자 복직 약속 이행 촉구’를 위해 철도노동조합 각 지방본부장을 비롯해 전국지부장 등 노조 간부 130여명이 모인 가운데 결의대회를 개최함.

    3. 결과와 의미

    수차례 복직 논의와 합의가 있었음에도 2003년 6·28 파업 해고자 47명에 대한 해고가 5년차에 접어들었다. 철해투는 5월부터 진행한 철도 중앙노사협의회에서 철도공사가 기존의 약속과 합의를 뒤짚고 해고자 복직을 회피하는 것을 확인했다.

    철해투는 총회를 열어 7월 2일~8월 8일까지 40일간의 해고자 복직과 명예회복, 원상회복을 위한 전국 순회 도보투쟁 계획을 결정했다.

    도보투쟁단은 경부선팀과 호남선팀으로 나누어 대전에서 합류 후 서울까지 행진하는 코스를 잡고 7월 2일 오전 10시 부산역에서 조합원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경부선팀 출정식을 갖고 행진을 시작했으며 7월 3일 오전 10시 목포역에서 호남선팀 출정식을 갖고 행진을 시작했다.

    매일 15~30km를 걷는 행군을 강행한 순회 도보투쟁단은 행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각 역사를 중심으로 조합원 선전, 간담회, 약식집회를 진행하였다.

    39일간 진행한 전국 순회 도보투쟁에는 매일 해고자와 복직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한 60여 명이, 각 지역 구간에는 연인원 2,380명의 간부, 조합원들이 함께했다. 특히 철도노조의 11월 파업을 앞두고 도보투쟁은 현장 조직을 다지고 조합원을 단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국 순회 도보투쟁의 결과 19,000여 명의 조합원 서명과 함께 8월 10일 전국 조합원 2,500여 명이 모인 ‘해고자 원직복직과 원상회복 쟁취 철도노동자 결의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철해투의 39일 전국 도보순회투쟁이 끝났지만 하반기 진행된 3차례의 임협 본교섭과 8차례의 실무교섭에서 해고자 복직 논의는 공전되었다. 철해투는 공사 경영진에 대한 직접 압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라 10월 16일 대전 철도공사 본사 앞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대전 본사 농성투쟁은 20일간 진행되었다. 농성기간 매일 오전 11시 정기집회와 함께 11월 1~2일 1인승무 저지투쟁 지원, 지역 순회방문 활동을 진행했다. 11월 2일에는 철해투 총회를 열고 파업 조직사업을 지원해달라는 철도노조의 요청에 따라 대전 본사 농성투쟁을 마무리하고 6일부터 전국에 파견 활동을 했다.

    11월 16일 철도노조의 파업이 철회되었지만 철해투는 11월 26일 현장탄압 중단과 해고자 복직 약속 이행을 위한 철도공사 앞 집회와 함께 무기한 천막농성에 재차 돌입했다. 파업 유보 직전 철도공사는 ‘2007년 내에 해고자 전원 복직안’을 제출했었으나 이후 복직안을 철회했다. 철해투는 매일 집회와 서울역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했고 천막 농성 6일차인 12월 1일에는 철도노조가 서울서부역에서 ‘해고자 원직복직, 노조탄압 분쇄’를 위한 철도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는 파업 유보 이후 처음으로 열린 노조 집회였으며 전국에서 700여 명의 조합원들이 참가했다. 서울 사옥 천막농성은 12월 8일까지 진행되었다. 철해투는 같은 기간 진행중이던 보궐선거에서 공사측의 탄압과 선거개입을 막기 위한 현장 투쟁 전환을 결의하고 18일간의 농성을 마무리했다.

    철해투는 선도투쟁 뿐 아니라 활발한 선전사업을 진행했다. 해고자의 고단한 삶과 고민을 담은 『해고동지 이야기』(2호)를 시작으로 6월에는 『47, 그들이 온다』 문집을 발간했다. 전국 순회 도보투쟁, 10월 대전 본사 농성, 11월 서울사옥 농성시 매일 속보(총 73회)를 발간하고 각종 대시민조합원 선전물(6종)과 포스터(2종)를 만들어 투쟁 상황과 요구를 알렸다.

    철해투는 2007년 당시 47명의 해고자 중 2/3는 철도노조 본조와 지방본부, 지부에서 상근자로 활동하고 있었음에도 39일간의 전국순회 도보투쟁과 두 차례의 천막농성 등 수차례 집중 투쟁을 통해 원직복직·원상회복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대내외에 알려 나갔다. 또한 해고자 복직 요구 이외에 당면한 ‘구조조정 반대, KTX 해고승무원 복직, 임단협 요구 쟁취’를 함께 요구하며 철도노조 당면 투쟁을 함께했다. 그러나 어느 해보다 왕성한 활동과 투쟁을 벌였음에도 2007년 원직복직은 좌절되었고 이후에도 해고자 복직과 원상회복을 위한 철해투와 철도노조의 투쟁은 지난하게 이어져갔다. 철해투는 2013년 4월 28일~5월 27일 한 달간 ‘철도민영화 저지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철길따라 함께 걷기 동행’ 전국도보행진을 재차 진행하였다.

    ※ 참고자료

    - 철해투, 『47, 그들이 온다』, 도서출판 갈무리, 2007.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7년 사업보고』, 2008.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7-2차 임시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07.10.05.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8년 정기대의원대회 자료』, 2008.03.27.
    - 철해투, 『도보순회투쟁 소식지 새로운 길 1~39호』, 2007.
    - 철해투, 『대장정 1~2호』, 2007.
    - 철해투, 『대전청사 농성투쟁 소식지 1~18호』, 2007.
    - 철해투, 『원직복직 쟁취 천막농성투쟁 소식지 1~11호』, 200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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