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산업은 국민의 교통기본권을 보장하고 물류를 책임지는 공공서비스로서 한국경제와 사회에 필수적인 핵심산업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공세로 업종별 운수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의 불균등화가 심화되고 상시적인 민영화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 운수노동자들은 업종별 투쟁과 함께 정책대안을 축적하면서 운수노동운동의 조직적 대안으로 운수산별노조 건설을 지향했다.
운수노동자의 연대와 운수산별 논의의 첫 출발은 1994년 전지협 공동파업 이후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화물운송노조연맹, 버스노조협의회, 택시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등이 구성한 운수산별협의회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운수산별 건설의 논의와 공동투쟁은 1995년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철도·지하철, 화물운송, 택시, 버스 등이 각각의 연맹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운수노동자학교를 운영하는데 그쳐 활성화되지 못했다. 특히 1999년 민주노총 내 3연맹 통합(공공연맹, 공익노련, 민철노련) 이후에는 사실상 운수산별 추진 논의가 중단되었다가 철도노조의 민주화와 항공, 지하철 부분의 민주노총 공공연맹 신규 가입으로 운수부문이 확장되면서 공공연맹 운수분과 주도로 다시 공동활동이 진행될 수 있었다.
특히 2003년에는 철도노조와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운수노동자들의 투쟁의 위력을 보여주었고, 하반기 제3기 운수노동자학교에서 운수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논의하면서 운수노조연대회의(운수연대)가 제안되었다. 2004년에는 철도·택시·화물의 공동투쟁 기획단이 구성되는 등 대응이 한 단계 발전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 상반기에 걸쳐 진행한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대한한공조종사노조, 철도노조, 화물연대의 파업은 운수노동자 투쟁의 위력을 사회적으로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3월에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예고되면서 서울지하철·화물·택시 등 운수 4조직의 시기집중 공동투쟁이 추진되었으며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1개월의 시차를 두고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처럼 지난한 역사 속에 운수노동자들의 연대와 공동투쟁의 결과는 이후 운수산별 건설을 위한 조직적 토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