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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운수산별 전환 활동

    철도노조는 기업·업종별노조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은 운수산별노조 건설에 복무하고자 운수부문 노동조합들의 연대와 공동투쟁을 함께하고자 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에 대한 노동조합 차원의 미흡한 대응과 6·28 철도파업의 불법화 및 대량해고 및 노조탄압, 화물연대파업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의 경험 속에서 기업·업종단위노조 위주의 투쟁을 넘어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철도노조는 상급단체인 공공연맹 산하 지하철·항공노조, 민주노총 산하 화물·버스·택시노조(연맹)와 함께 운수연대를 구성해 ‘운수노동자학교’, ‘시기집중 공동파업 추진’ 등의 사업과 투쟁을 통해 산별노조 건설 활동에 함께했다.

    2006년 철도노조는 산별노조 전망과 관련해 선 운수산별노조 건설, 이후 공공운수부문 통합과 공공운수대산별이라는 경로를 채택하고 운수산별노조 건설 활동을 본격화했다.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연내 운수산별노조 건설을 핵심사업으로 설정하고 철도산별기획단 설치와 운영, 운수연대와의 공동회의와 공동집회를 진행하였다. 하반기에는 임시대의원대회 결의를 통해 ‘철도노조 산별추진위’ 구성과 운영, ‘철도공공성 강화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실천단’ 구성과 활동, ‘철도노조 산별학교’를 비롯한 현장 조합원 교육과 홍보활동을 진행했으며 11월 1일 재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쟁의대책위원회 전환 결정과 함께 13~15일 임단협 쟁의행위찬반투표와 운수산별 전환 찬반투표 일정을 확정해 투표 결과 조합원 24,842명 가운데 91.4%가 투표에 참여해 15,704명이 산별 전환을 찬성해 2/3를 뛰어넘는 68.44%의 찬성률로 조직전환이 가결되었다. 한편 철도노조 이외의 민주택시연맹, 민주버스노조, 화물연대, 아시아나항공노조 등 운수 조직들이 같은 기간 산별전환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였고 모두 가결되었다.

    마침내 12월 26일 대전도시개발공사 대강당에서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초대 위원장을 맡은 전국운수산업노조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경과
    결과와 의미

    1. 배경

    운수산업은 국민의 교통기본권을 보장하고 물류를 책임지는 공공서비스로서 한국경제와 사회에 필수적인 핵심산업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공세로 업종별 운수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의 불균등화가 심화되고 상시적인 민영화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서 운수노동자들은 업종별 투쟁과 함께 정책대안을 축적하면서 운수노동운동의 조직적 대안으로 운수산별노조 건설을 지향했다.

    운수노동자의 연대와 운수산별 논의의 첫 출발은 1994년 전지협 공동파업 이후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화물운송노조연맹, 버스노조협의회, 택시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 등이 구성한 운수산별협의회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운수산별 건설의 논의와 공동투쟁은 1995년 민주노총 출범과 함께 철도·지하철, 화물운송, 택시, 버스 등이 각각의 연맹 조직으로 발전하면서 운수노동자학교를 운영하는데 그쳐 활성화되지 못했다. 특히 1999년 민주노총 내 3연맹 통합(공공연맹, 공익노련, 민철노련) 이후에는 사실상 운수산별 추진 논의가 중단되었다가 철도노조의 민주화와 항공, 지하철 부분의 민주노총 공공연맹 신규 가입으로 운수부문이 확장되면서 공공연맹 운수분과 주도로 다시 공동활동이 진행될 수 있었다.

    특히 2003년에는 철도노조와 화물연대의 파업으로 운수노동자들의 투쟁의 위력을 보여주었고, 하반기 제3기 운수노동자학교에서 운수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을 논의하면서 운수노조연대회의(운수연대)가 제안되었다. 2004년에는 철도·택시·화물의 공동투쟁 기획단이 구성되는 등 대응이 한 단계 발전했다. 이후 2005년부터 2006년 상반기에 걸쳐 진행한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대한한공조종사노조, 철도노조, 화물연대의 파업은 운수노동자 투쟁의 위력을 사회적으로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3월에는 철도노조의 파업이 예고되면서 서울지하철·화물·택시 등 운수 4조직의 시기집중 공동투쟁이 추진되었으며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1개월의 시차를 두고 실제로 파업에 돌입하였다. 이처럼 지난한 역사 속에 운수노동자들의 연대와 공동투쟁의 결과는 이후 운수산별 건설을 위한 조직적 토대가 되었다.

    2. 경과

    철도노조는 동종 업종의 연대와 공동투쟁을 어용 철도노조 시절인 1994년부터 전기협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2001년 민주집행부 출범 이후에는 철도노조의 특성(운수, 공공부문)과 연대활동의 경험에 근거해 2002년 상급단체 변경 조합원 투표를 통해 민주노총 공공연맹에 가입하게 된다.

    기업별 다업종노조 연합체였던 공공연맹은 산별노조로의 조직발전 전망에 대한 내부 논의를 거쳐 공공노조와 운수노조 건설, 이후 공공운수대산별노조 건설이라는 경로를 채택했다. 이에 철도노조는 운수산업적 특성과 공공부문 소유 특성을 함께 가진 조건에서 당시 논의를 통해 운수산별노조 건설에 함께한다는 입장을 정하고 운수연대활동을 중심으로 운수산별 건설운동에 함께했다.

    2006년 철도노조는 운수산별 건설을 정기대의원대회 핵심사업으로 설정하고 철도산별기획단을 설치해 관련 쟁점들에 대한 내부 토론, 입장안 마련을 진행했다. 상반기에는 운수연대(이후 운수산별추진위) 회의와 공동투쟁 집회 활동에 결합해 나갔다.

    하반기에는 운수산별노조 건설 사업을 더욱 본격화했다. 7월 26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11월 산별 전환을 위한 조합원 총회 개최를 결의하고 ‘철도노조 산별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본부조합·지역본부·지구 단위의 산별노조 건설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준비, 집행하기로 했다. ‘철도노조 산별학교’를 열어 연인원 450여 명의 간부 조합원들이 숙박교육에 참가하였고 현장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홍보활동을 펼쳐나갔다. 또한 현장간부들을 대상으로 ‘철도 공공성 강화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실천단’을 구성해 하반기 임단협 투쟁과 연계한 현장 활동을 진행했다.

    11월 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는 쟁의대책위원회 전환 결정과 함께 13~15일 임단협 쟁의행위찬반투표와 운수산별 전환 찬반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고 투표 결과 조합원 24,842명 가운데 91.4%가 투표에 참여해 15,704명이 산별 전환을 찬성해 2/3를 뛰어넘는 68.44%의 찬성률로 조직전환이 가결되었다. 한편 철도노조 이외의 민주택시연맹, 민주버스노조, 화물연대, 아시아나항공노조 등 운수 조직들이 같은 기간 산별전환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였고 모두 가결되었다.

    운수연대는 2006년 산별 전환과 건설사업이 구체화되자 추진위, 준비위로 탈바꿈하면서 산별노조 건설에 따르는 여러 준비(조직체계, 조합비 재정, 교섭권한, 지도부 구성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마침내 12월 26일 대전도시개발공사 대강당에서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창립대회’를 개최하고,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초대 위원장을 맡은 전국운수산업노조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

    1) 운수노조

    • 운수연대가 오후 2시 대학로에서 13,0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운수노동자 공동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 결의대회’를 개최함.

    • 운수연대 제2차 연대회의(공동의장단 회의) 개최, (가칭)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추진위원회 전환에 관한 건이 가결됨.

    • 운수연대 제3차 연대회의(공동의장단회의) 개최, 운수노조추진위(운노추) 구성 및 운영방안을 논의함.

    • 운수노조추진위원회(운노추) 제1차 집행위 개최, 운영규정 등 확정. 제5기 운수노동자학교를 4월 27일 개최하기로 결정함.

    • 운노추 제1차 운영위원회 개최, 김연환 현 운수연대 상임의장을 운노추 상임위원장으로 선출, 업종별 공동위원장 등 최종 27명의 운영위원을 구성함.

    • 제5기 운수노동자학교 개최, 2006년 운수산별 건설 기본 계획(안) 제출, 논의

    • 운수노동정책연구소 개소식 및 창립 기념토론회 개최

    • 운노추 운영위·집행위 합동수련회를 개최해 운수산별 건설 시기 및 경로, 하반기 투쟁계획에 대한 논의를 진행함.

    • 운노추 3차 운영위원회 개최, 하반기 운수 총파업을 포함한 운수 공동투쟁 계획을 논의함.

    • 운노추 제4차 운영위원회 개최, 운수산별노조 건설계획안에 대한 각 조직별 의견서 논의함.

    • 철도웨딩홀에서 약 100여 명의 간부들이 참가한 가운데 강령·규약 토론회를 진행함.

    • 21일까지 11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운수노조 확대간부수련회를 개최함. 수련회에서 강령·규약·지도부·창립대회안 논의

    • 운노추 제7차 운영위 개최, 산하조직 총회를 통한 산별전환투표의 집중 진행과 동시개표를 결정함.

    • 노동자대회 사전집회로 5천여 명의 운수 노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운수노조 건설과 하반기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를 개최함.

    • ~15일. 각 업종별 조직전환 투표 실시, 총투표를 진행한 결과 산별전환 투표 찬성이 83.6%로 압도적 가결됨.

    • 운수노조준비위 제2차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운수노조 창립대회 기획안, 운수노조 선언·강령·규약안, 업종본부 설치안, 운수노조 사업계획안을 논의함.

    • 운수노조준비위 제3차 운영위원회를 열어 운수노조 창립대회 일정을 12월 26일로 최종 확정함.

    • 대전도시개발공사 대강당에서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창립대회’를 개최해 전국운수산업노조가 출범함.

    2) 철도노조

    • 4~5일 대전 동학산장에서 철도노조 산별기획단 1차 수련회가 열림.

    • 철도노조가 중앙위원회를 열어 노조 예산의 전략사업비 사용과 관련, 정책사용비 명목으로 ‘운수노동정책연구소 설립 및 운영’에 1,260만 원(조합원 1인당 50원씩 12개월, 조합원 2만 1천명 기준)을 사용할 것을 통과시킴.

    • 철도노조가 양평 대명콘도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함. 이날 회의에서 오는 11월 산별 전환 조합원 총회를 열어 운수산별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만장일치로 결의하고 운수산별 전환을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 ‘철도노조 산별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세부 사업계획을 수립키로 함.

    • 철도노조가 11월 운수산별 전환을 위한 조합원 총회를 앞두고 4일부터 9일까지 세 차례 1박2일 일정의 산별학교를 염. 조합원과 현장 간부들을 대상으로 오후 입교식을 시작으로 다음날 10시 퇴교식까지 1박2일 동안 산별 전환에 대한 집중 교육을 진행함. 교육 참가 조합원 규모도 매회 150명씩, 450여 명이 산별학교에 참여함.

    • 철도노조가 20일부터 2박3일간 강원도 홍천에서 전국지부장 회의를 열고 산별노조 건설 등 하반기 사업계획을 확정함. 산별 전환과 관련해서는 ‘철도 공공성 강화와 산별노조 건설을 위한 실천단 사업’을 현장 단위로 확대하고 산별학교와 함께 준비하기로 결정함.

    • 철도노조가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쟁의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결의함. 하반기 공사의 합의 불이행과 임단협 교섭 교착에 맞선 투쟁일정과 함께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산별전환을 위한 총투표를 결의함.

    • 철도노조가 지난 13일부터 사흘 동안 산별전환 투표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산별전환 건은 68.44%의 찬성률로 가결됨. 조합원 24,842명 가운데 91.4%가 투표에 참여해 15,704명이 산별 전환을 찬성한 것임.

    3. 결과와 의미

    1995년 민주노총 출범 이후 민주노조들은 기업의 장벽을 뛰어넘고자 동종산업 내의 단일 산별노조 건설에 착수했다. 그리고 1998년 보건의료노조 출범, 2001년 금속노조 출범을 거치면서 산별노조 건설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나아가 대기업과 공공부문 주요 노조의 산별전환이 필요했는데 2006년 현대차노조의 금속노조 전환, 사회보험노조의 공공노조 전환과 함께 철도노조의 운수노조 전환 성공이 중요한 전환점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운수노조는 출범 이후 이명박정부의 화물연대 가입을 이유로 한 설립신고 반려, 철도본부 투쟁에 대한 대량해고와 손해배상 등 전면적 탄압에 직면했다. 반면 이에 맞선 산별 교섭과 투쟁, 산별 조직체계에 따른 일상활동은 취약했고 공공운수노조로의 조직전환과 통합과 관련한 내부 이견이 제대로 조율되지 못해 애초 기대한 산별노조의 역할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철도노조도 타 전환 조직과 마찬가지로 운수산별노조로의 조직 전환을 통해 철도본부로 조직이 변경되었지만 조직명칭, 조합비, 의사결정구조, 교섭권한, 일상활동이 조직 전환 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운영되어 운수산별노조 건설의 취지와 의미가 퇴색되었다.

    운수노조는 2007~2011년 5년간의 활동을 진행하며 산별교섭과 공동투쟁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러 한계에 직면했고 2010년 비대위체제로 전환 이후 공공운수노조 전환을 업종본부별로 결정하기로 하여 6개 업종본부 중 화물연대,민주버스,공항항만운송본부,항공본부가 공공운수노조로 전환하고, 민주택시본부는 민주택시연맹으로 회귀, 철도노조가 마지막으로 공공운수전환투표 부결후 철도소산별로 전환하면서 청산하게 되었다. ‘백만 운수산별 건설, 운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기치로 출범한 운수노조는 교통물류 공공성 강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대체수송을 거부하며 파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산별노조였음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고용형태 및 노동조건의 차이가 큰 상태에서 공동사업 및 공동투쟁의 축적을 통해 대중적으로 산별요구와 의식이 구축되지 못한 산별운동의 취약함을 드러내며 우리에게 대중적 산별건설 운동의 중요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이후 철도노조는 공공운수노조 전환투표가 부결되면서 철도소산별로 회귀하는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고 다시 대산별 건설의 전망을 세워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유럽의 노동자들은 산별교섭제도를 위한 기본원칙을 법제화하여 산별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단체교섭의 수준을 국가, 산업, 기업으로 구분하여 기업별 협약이 산별협약보다 노동자에게 불리할 수 없다는 ‘산별협약 최저기준 원칙“, 교섭의무화와 대표교섭단체의 교섭권 인정, 산별교섭으로 체결된 단체협약의 특정산업 내의 모든 기업과 근로자에게 공통된 규칙을 적용하는 일반적 효력확장 및 확대 등을 법제화하는 것 또한 이후 산별건설운동을 위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 참고자료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6년 사업보고』, 2007년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7년 정기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07.03.22
    - 전국철도노동조합, 『철도노조 산별학교 자료집』, 2006.09.04.
    - 운수노동자학교준비위,『제4기 운수노동자학교』,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i126901, 2003.12.11.
    - 운수노조추진위, 『운수노조 강령.규약 토론회 자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i98176, 2006.09.28.
    -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운동사』, 한내, 2013.08.0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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