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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쟁취’ KTX승무원 파업 투쟁

    2004년 KTX 개통 당시 여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자회사인 홍익회 소속의 계약직으로 고용되었다. 승무원들은 철도공사의 지시와 감독을 직접 받으면서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1년 단위 불안정한 고용계약을 강요받았다. KTX 승무원들은 차별적 처우와 고용불안을 해소하고자 직접고용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2005년 11월 KTX 승무원들은 철도노조에 가입한 이후 2006년 철도노조의 3·1파업에 함께했고 이후 단독파업을 지속하였다. 파업 기간 철도공사 서울본부, 국회 헌정기념관,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점거농성, 집회, 선전전, 단식농성을 진행하며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투쟁을 장기간 이어갔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직접고용 수용 불가방침을 고수했고, 5월 19일 복귀 요구를 거부한 KTX 승무원 280명이 집단 정리해고되었다. 이후 집회시위 금지 가처분 결정, 노동부의 합법도급 판정, 민형사상 고소고발과 손배 청구, 개별 회유와 협박 등의 탄압도 거세졌다.

    장기 투쟁에 따른 생계 곤란과 이탈이 발생했지만 철도노조의 지원과 엄호,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와 연대의 힘으로 투쟁은 2007년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투쟁 500일이 경과하던 7월 서울역 집단단식 투쟁을 벌인 이후 9월 노사정3자협의체 구성과 역무계약직으로의 고용유지 방안 등이 제시되었지만 이마저도 철도공사의 합의 거부로 좌절되었다.

    2008년 이명박정권의 등장, 광우병소고기·민영화 반대 촛불항쟁 등 정세에서도 투쟁을 이어갔고 8월 ‘끝장투쟁’을 결의하며 서울역 조명철탑 고공농성을 전개하였지만 철도공사는 자회사 고용을 고수해 교섭은 최종적으로 결렬되었다. 고공농성 이후 KTX 승무원들은 현장투쟁을 중단하고 법적 대응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진행한 결과 2011년, 2012년 서울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은 ‘철도공사가 사용자이고 고용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3년만에 열린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패소 이후 철도공사는 해고 승무원들에게 ‘임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생계 파탄 위기에 몰린 조합원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KTX 승무원과 철도노조는 10년 만에 투쟁을 재개했다. 촛불항쟁과 함께 KTX 승무원 장기투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 2017년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가 참여하는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 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사태 해결을 촉구했고 대선 시기 해결을 약속한 문재인정부와 철도공사를 상대로 한 투쟁을 통해 압박 수위를 높여갔다,

    2018년 5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KTX 판결이 재판거래의 대상이 되었음이 드러났다. 같은 해 5월 승무원들은 서울역광장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마침내 7월 21일 철도노조와 철도공사가 사무영업(역무)직으로의 정규직 고용에 합의하여 해고 승무원 140명의 순차적 복직이 이루어졌고 KTX승무원들이 해고된지 4,526일만에 투쟁이 마무리되었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투쟁 경과
    결과와 의미

    1. 배경

    1) 채용 과정과 ‘취업사기’ 논란

    2004년 KTX 개통을 앞두고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은 재단법인 홍익회를 통해 KTX 여승무원을 간접고용 형태로 모집하였다. 당시 채용 공고와 홍보에서는 “정규직 전환”, “공무원 수준의 복지 제공” 등이 강조되었고, 언론은 ‘지상의 스튜어디스’, ‘꿈의 직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실제로 구직사이트에도 공무원 채용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어 지원자들은 안정된 공기업 정규직으로 진입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비정규직 간접고용 구조였고, 이는 곧 “취업사기”라는 사회적 비판으로 이어졌다.

    2) 정부·철도공사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대 정책

    KTX 승무원 문제는 단순한 채용 조건이 아니라 철도산업 구조조정 정책과 연결되어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철도는 효율화·민영화 논리 속에서 구조조정이 추진되었고, 인건비 절감을 위해 기존 정규직이 수행하던 업무가 단계적으로 외주화되었다. 새마을호 여승무원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이었으나, KTX 여승무원은 한 단계 더 나아가 하청회사 소속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채용되었다. 이는 철도 고용구조에서 중요한 변화를 의미했다.

    3) 불법파견과 제도적 모순

    철도청은 2003년 노동부에 “열차승무 업무의 외주화 가능 여부”를 질의했으나, 노동부는 “특실 서비스 외에는 불가”라고 답변하였다. 철도청 내부 문건에서도 “여승무원은 관리자의 지시·감독 아래 업무 수행하므로 도급 위탁이 곤란”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계약은 ‘승객 서비스 업무’를 홍익회가 맡도록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여승무원들은 실질적으로는 철도공사 팀장의 지휘를 받으며 안전업무까지 담당하였다. 이는 불법파견의 전형적 형태였지만, 정부와 철도청은 이를 외형적으로 합법 도급처럼 포장하였다.

    4) 열악한 노동조건과 차별

    입사 후 승무원들이 마주한 현실은 철도청이 선전했던 ‘꿈의 직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중한 노동: 하루 수차례 열차 배치, 인력 부족으로 인한 2인 승무, 휴일 강제 근무 등의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다. 홍익회가 철도청으로부터 1인당 240여 만원의 위탁비를 받았으나 실제 임금은 월 120~130만 원 수준에 불과했고, 각종 수당과 상여금도 체불되었다. 또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 팀장에 비해 10분의 1 수준의 상여금만 지급되었으며, 근무 필수품(유니폼, 가방 등)도 개인 부담이었다. 생리휴가 제한, 병가 시 강제 근무, 휴일근무 강요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가 다수 발생하였다. 승무원들은 고속철도의 각종 문제(차량 결함, 잦은 사고·지연) 속에서 승객의 불만을 직접 감당하며 “욕받이” 역할을 했으나, 이를 보상받는 대가는 극히 낮았다.

    2. 투쟁 경과

    • 철도공사는 홍익회를 통해 KTX 여승무원을 모집하면서 정규직 전환과 공무원 수준의 복지를 약속하였으나, 실제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채용하였다.

    • KTX가 정식 개통되었으나, 승무원들은 준비 부족에 따른 졸속 운영과 열악한 근로환경에 직면하였다.

    •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전환되었으나 승무원들에게 제시된 것은 정규직 전환이 아닌 1년 단위 재계약이었고, 임금은 오히려 삭감되었다.

    • 철도공사와 철도유통(구 홍익회) 사장을 상대로 불법파견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노동부에 제출했으나, 노동부는 8월에 ‘합법 도급’이라고 판정하였다.

    • 강제로 서비스 교육을 추진하자, 승무원들은 2인 승무 반대와 휴일 근무 거부를 선언하며 투쟁을 본격화하였다.

    • KTX 승무원들이 철도노조에 공식 연대를 요청했고, 10월 15일에는 첫 연대집회가 서울역에서 개최되었다.

    • 16~18일 상급조직 변경 총투표가 실시되어 99% 찬성으로 철도노조 가입이 결정되었고, 12월 2일부로 승무원들은 전국철도노동조합에 합류하였다.

    •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 정규직 전환은 불가능하다며 KTX관광레저 자회사 고용 방침을 발표하였다.

    • KTX 승무원들은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88% 찬성으로 총파업을 결의하였고, 2월 24일부터 사복 착용 투쟁에 돌입하였다.

    • 철도노조 총파업에 KTX 승무원들이 참여하였으며, 이후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한 3월 4일 승무원 총회를 열어 단독 파업을 결의하였다. 부산 파업대오가 서울로 전원 상경하였다.

    • 서울 철도공사 지역본부 복도에 농성장을 차리고 점거 농성을 시작하였다.

    • 철도공사 사옥에서의 농성 중 공권력이 투입되어 30여 명이 부상당하며 최초의 강제 진압 사태가 발생하였다.

    •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불법파견토론회를 연 뒤 농성에 돌입하였고, 이튿날 전원 연행되었다.

    • 승무원 40여 명이 열린우리당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선대본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농성장에 재차 경찰력이 투입되어 80여 명이 강제 연행되었다.

    • 복귀 요구를 거부한 KTX 승무원 280명이 집단 정리해고되었다.

    • 지도부가 서울역 광장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6월 초에는 릴레이 단식과 시민사회 연대가 이어졌다.

    • 서울역 농성장에서 500인 동조 단식 기자회견이 열렸고, 승무원들은 ‘박종철 인권상’을 수상하였다.

    • 노동부 재조사 방침에 따라 철도노조와 승무원들은 불법파견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서울역에 이어 용산역 농성장에서 퇴거당하면서, 승무원들은 역 내 농성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 노동부의 공정한 조사를 촉구하며 서울지방노동청 점거 농성을 진행하던 중 경찰이 투입되어 승무원 53명이 전원 연행되고 농성 천막이 강제 철거되었다.

    • 승무원들은 정복을 입고 국회 앞에서 쇠사슬을 묶고 투쟁을 벌였으며, 같은 날 여성 교수 41명은 정리해고된 여승무원들의 우선 고용을 촉구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 노동부는 KTX 승무원 고용구조를 재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지만, ‘합법 도급’ 판정을 내렸다.

    • 서울역광장에서 방송차량을 이용해 주간 농성을 시작하였다.

    • 교수모임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KTX 외주 위탁의 불법성과 철도공사의 직접 고용 필요성을 주장했고, 같은 날 노동부 장관도 직접고용 검토를 언급하였다.

    • KTX 승무원들이 전국 철도 현장순회 활동과 서울역 노숙투쟁에 들어갔다

    • 철도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KTX 승무원 문제 해결이 주요 요구로 채택되었으나, 6월까지 이어진 교섭은 공전되었다.

    • 철도노조 위원장, 철도공사 사장,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부장관이 ‘KTX·새마을호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공익 3자 협의체’구성을 합의했으나 KTX 승무원들의 사전 동의를 얻지 못했다.

    • 서울역 구내 조명 철탑(40m)에 KTX 승무지부장 등 5명이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하며 ‘끝장 투쟁’을 선언하였다.

    • 서울지방법원은 본안 1심에서 철도유통이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코레일과 KTX 승무원 사이에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결하였다.

    • 항소심 재판부가 1심 판결을 유지하며 승무원들의 직접고용 관계를 인정하였다.

    • 민주당·민주노동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등 야5당은 철도공사가 법원 판결을 수용하고 해고 승무원들을 즉각 복직시켜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법원은 1차·2차 소송을 병합 심리하여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주었고, 승무원들은 최종적으로 패소하였다.

    • 철도공사가 승무원들에게 ‘부당이득금 반환’ 내용증명을 발송하며 임금환수를 요구하였다.

    • 철도공사가 대전지방법원에 1인당 1억원 여에 달하는 임금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철도노조와 정책협약을 맺으며 KTX 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 KTX 해고승무원 33명과 종교·여성단체 등 20여 개 단체가 참여한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 대책위원회’가 출범하였다.

    • KTX 승무원들이 서울역과 부산역 대합실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10만 명 서명운동을 시작하였고, 매주 월요일과 일요일 두 시간씩 피켓 시위를 진행하였다.

    • 종교인들이 서울역에서 청와대 분수광장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승무원들의 복직과 부당이득금 환수 철회를 촉구했다.

    • 대전지방법원은 종교계 중재안을 반영해 해고 승무원들이 임금의 5%만 반환하고, 철도공사는 나머지 청구를 포기하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 철도노조와 오영식 신임 철도공사 사장이 해고자 복직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노사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 김승하 지부장과 정미정 총무부장이 서울역광장에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하였다.

    •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KTX 판결을 이용한 재판 거래를 시도했다는 ‘사법농단’ 사건이 폭로되면서 사법농단 피해자의 대표 사례로 주목받았다.

    • 철도노조와 승무원들은 대법원 대법정까지 진입해 ‘재판거래 의혹’을 규탄하며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했고, 이는 대법원 역사상 첫 점거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 철도공사와 철도노조가 복직합의서를 체결해 2006년 해고된 승무원 중 1차 소송을 제기한 33명은 연내 복직, 나머지는 2019년까지 순차적으로 복직하기로 하였다.

    3. 결과와 의미

    KTX 승무원들의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요구’ 파업과 투쟁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 대표적인 투쟁으로 기록된다. 2004년 고속철도 개통과 함께 채용된 KTX 승무원들은 철도청과 홍익회의 대대적인 홍보 속에 “정규직 전환 보장”이라는 약속을 믿고 입사했으나, 실제 현실은 계약직과 하청 고용, 열악한 노동조건, 임금체불과 각종 차별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저항은 곧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철도노조와의 결합을 통해 본격적인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투쟁의 결과는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가혹했다. 승무원들은 파업과 농성, 점거 등 다양한 형태의 저항을 이어갔으나, 철도공사와 정부는 직접고용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파업 기간 중 자회사로의 복귀를 거부한 승무원 280명이 집단 정리해고를 당했다. 또한 공권력 투입과 물리적 충돌,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탄압이 이어져 정당한 요구 수용 대신 커다란 정신적·물리적 피해를 입었다. 결국 2005~2008년 장기 투쟁을 진행했음에도 요구 쟁취를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KTX 승무원 투쟁은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했다. 노동부는 ‘합법 도급’ 판정을 내렸지만, 이후 국회·감사원·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KTX 여승무원 직접고용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법원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공공부문 간접고용의 불법성과 성별·고용 차별구조 문제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법제도적 제약과 정부와 철도공사의 탄압에도 15년에 이르는 기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평균 연령 20대 중반의 여성 노동자들이 악조건 속에서도 조직화와 연대를 통해 장기간 투쟁을 이어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주요한 사례와 경험으로 자리매김되었다.

    또한 이 투쟁은 철도노조와의 연대를 통해 정규직·비정규직이 함께 싸우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철도노조는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의 요구를 철도 현장의 전체 과제로 받아들이고 철도노조 조합원으로 가입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투쟁을 함께했다. 공동 논의와 함께 주요 국면에서 철도노조 조합원 집회·동조단식·성명·법적 대응을 진행했고 시민사회연대, 대국회·대정부 투쟁과 대응을 함께했다. 철도공사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라치기에 따른 조직내 갈등과 이해관계 조정, 더 높은 수준의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와 투쟁이 이뤄지지 못한 한계가 있지만 ‘철도노동자는 하나’를 슬로건으로 정규직 중심 노조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과 끝까지 함께하고자 했다. 당시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한 과제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면서도,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KTX 승무원 투쟁은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냈다. 학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여성단체, 인권단체 등이 연대에 나섰고 연대의 힘은 결국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 해결의 가능성을 열었다. 정치권의 복직 해결 약속, 부당이득 환수 문제에 대한 법원 중재를 이끌어냈고 정부와 철도공사를 다각도로 압박했다.

    결론적으로, KTX 승무원 투쟁은 “승리하지 못한 승리”였다. 노사 합의로 14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이 되어 일터로 돌아갔지만 15년간 걸어야 했던 길은 멀고 험난했다. 이 투쟁은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의 고통과 구조적 불평등을 드러내고, 장기간의 연대와 저항을 통해 사회적 관심과 연대를 촉발했다. 철도노조가 보여준 연대와 지원은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연대와 공동투쟁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KTX 승무원 투쟁은 단순한 고용의제를 넘어 민주노조 운동사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 참고자료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6년 사업보고』, 2007.
    - 전국철도노동조합, 『2018년 사업보고』, 2019.
    - KTX승무지부, 『KTX 승무원 인권(노동, 여성) 탄압보고서』, 2005.11.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6년 정기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06.03.31.
    - 한국여성민우회, 『KTX 여승무원 직접고용, 왜 필요한가 토론회 자료집』, 2006.04.26.
    - KTX승무지부, 『KTX 여승무원 파업투쟁보고서』, 2006.05.29.
    - 여성노동네트워크·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 『KTX 승무원 불법파견 재조사 결과에 대한 긴급 토론회 자료집』, 2006.10.10.
    -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 고용문제 해결 연속공개토론회 자료집』, 2007.01.29.
    - KTX승무지부, 『근로자지위보전 및 임금지급가처분 관련 소송 자료』, 2008.10.22.- 국회의원 박수현·은수미·이미경·진선미, 『KTX승무원은 과연 정규직노동자가 되었는가 국회토론회』, 2014.02.11.
    - 전국철도노동조합, 『KTX 여승무원 해고투쟁 4,000일 대안 모색 대화마당 보고서』, 2017.02.10.
    - 코레일관광개발지부, 『KTX승무원 무엇이 이들의 직접고용을 가로막는가 국회토론회 자료집』, 2018.08.0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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