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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철도 상업화 중단, 구조조정 반대, 비정규직 철폐’ 3·1 파업

    2005년 1월 한국철도공사 출범 후 추진된 강도 높은 구조조정(조직슬림화, 주변업무의 자회사화, 외주화 확대)을 막아내기 위해 철도노조는 2006년 3월 1일 ‘△ 철도 상업화 중단 △ 구조조정 분쇄 및 고용안정 △ 해고자 복직 △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4일간의 전면파업을 진행하였다. 파업 중 불법파업 공세에 따른 압수수색과 파업 지도부 검거와 대량 징계, 파업 조합원들에 대한 무차별 연행의 탄압이 예년과 같이 이어졌고 노조는 4일간의 파업 이후 현장 복귀와 현장투쟁으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이후 현장투쟁과 교섭을 이어가다 3월 31일 정기단협에 합의해 파업과 현장 투쟁이 마무리되었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파업 투쟁의 진행
    결과와 의미

    1. 배경

    2005년 1월 한국철도공사 출범 후 정부는 철도공사에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를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철도공사는 조직의 슬림화를 기본으로 주변 업무를 자회사화하고, 단순 업무의 외주화를 추진하는 내용을 담은 ‘경영개선 기본계획(2005~2009년)’을 순차적으로 발표하였다. 적자 역에 대해 단계적 폐지 계획과 수익구조 개선을 위한 할인요금제를 폐지하는 등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이 철도현장에 관철되었다. 철도공사는 조직 개편을 실시하여 차량관리단, 철도관제조직 등을 통폐합하였으며, 직급체계와 임금체계를 개편하였다. 또한, 일부 유지 보수업무, 승차권 판매업무, 승무업무 등을 외부에 위탁하였고, 15개 자회사를 9개로 통폐합하였다.

    한편 철도공사 전환 이후 진행된 구조조정 공세에 노조와 조합원들은 인력감축에 대한 우려와 공사체제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는 직제·임금체계와 처우개선에 대한 불만과 함께 기 합의한 노사합의가 또 다시 일방적으로 파기될 수 있다는 불신이 확대되었고 특히 2003년 4·20 합의로 인한 원상회복(인력 충원, 손해배상·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등)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에 철도노조는 2005년 정기단협에서 11월 쟁의행위를 결의했는데 조합원들의 찬성률은 이러한 불안감을 반영해 재적대비 70.2%로 매우 높았다. 노조는 애초 2005년 12월 파업을 결정했으나 교섭 진행 경과를 반영해 2006년 초로 연기되었고 마침내 교섭 결렬에 따라 3월 1일 전면 총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2. 파업 투쟁의 진행

    • 철도노조 회의실에서 중앙쟁의대책위원회의를 열고 3월 1일 오전 1시를 기해 총파업에 돌입하는 일정을 포함한 투쟁계획을 확정하였다.

    • 서울, 부산, 영주, 순천, 대전 등 전국 5개 지역에 조합원 9,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기단협 승리를 위한 철도노조 총력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3·1 총파업에 앞서 전 조합원 준법투쟁에 돌입하였다.

    • 철도 해고자들이 단식을 이어가는 가운데 10여 명이 해고자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오전 6시, 용산차량 검수선 차고지 지붕 농성에 들어갔다.

    • 건설교통부가 철도노조 파업에 대비해 합동특별교통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파업 돌입 시 차량운영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의 계획을 담은 ‘특별교통대책’을 발표하였다.

    • 노동부·법무부·건교부 3개 부처 장관이 오후 10시 과천청사 브리핑실에서 ‘민주노총 총파업 및 철도·서울지하철 파업 관련’ 담화 발표를 통해 불법파업에 대해 엄정대처 하겠다고 밝혔다. 파업을 앞두고 14차 본교섭이 오전 10시부터 철도공사 서울사무소에서 본교섭과 실무교섭을 번갈아 열며 오후 9시까지 진행했으나 교섭이 최종 결렬되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오후 9시 철도 조정안을 직권중재에 회부하였다. 오후 10시를 기해 전국 5개 지역에서 철도노조 총파업 전야제가 진행되었다. 서울지역은 신이문 차량기지에 3,500여 명을 비롯해 대전 정비창, 부산 동아대, 영주 실내체육관, 순천대 체육관 등 전국에서 11,000여 명이 집결하였다.

    • 철도노조가 5개 지역 거점농성장(서울 이문차량기지와 부산 동아대학교, 영주시 실내체육관, 순천대학교, 대전정비창)에서 조합원 12,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새벽 1시 파업에 돌입하였다. 새벽 1시 파업 선언 후, 오전 11시 기준 전국 16,450여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결합했고 파업에 따라 열차 운행률이 평상시 대비 36%로 떨어졌고 수도권 전철은 75%의 운행률을 기록했다.

    • 오전 10시 30분, 전국적인 산개 투쟁에 돌입하였다. 새벽 노사협상이 결렬된 뒤, 교섭 재개 가능성이 불투명하고, 노조 농성 현장에 병력투입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5개 거점 농성장에서 농성 중이었던 1만 7,000여 명의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10여 명 단위 수준의 소조 단위 산개파업에 들어갔다.

    • 파업 3일차, 전국에서 산개파업을 벌이는 철도노조 조합원들에 대해 경찰의 무차별적인 연행으로 401명의 조합원들이 연행되었다. 철도노조와 민주노총은 경찰의 무차별 연행 및 장시간 대치와 관련해 오후 4시 30분 국가인권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긴급구제를 촉구하고 이택순 경찰청장 등 경찰 관계자들을 제소하였다. 한편 경찰은 오후 용산 철도노조 사무실과 서울지방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철도노조 각급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확대하고 파업지도부 15명에 대해 추가로 체포영장을 발부하였다. 철도공사가 업무에 복귀하지 않고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조합원 1,857명에 대해 2차 직위해제를 내려, 총 2,565명에 대한 직위해제를 단행하였다.

    • 오후 3시, 철도노조가 파업 중단을 선언하였다. 노조는 이날 2시경 전국 5개 권역에서 현장투쟁 결의대회를 갖고, “현장 투쟁으로 전환을 위해 현장 복귀와 함께 각 지부쟁대위는 ‘총파업 보고 및 노조탄압 분쇄 결의대회’를 매일 개최하고 현장탄압 분쇄투쟁을 조직할 것”을 결의하였다.

    • 서울차량지부, 수색차량지부 부곡분소 C조 근무지정 거부투쟁 시작

      오봉지구 화물열차 담당하는 차량,운전,운수 조합원 안전운행투쟁 시작

    • 서울차량지부, 전면적인 작업거부투쟁 시작

    • 철도공사가 노조 파업과 관련해 직위해제조치 했던 2,565명의 조합원 가운데 노조 간부와 파업에 적극 가담한 900여 명을 제외하고 1,600여 명을 업무에 복귀시킴.

    • 노조가 기자회견을 개최해 3·1파업 당시 벌어졌던 인권 침해 사례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 연행 사유를 밝히지 않은 강제연행 △ 종교시설 및 각종 민간시설에 대한 봉쇄 △ 조합원 협박 △ 폭동 진압용 헬기 등을 동원한 협박 △ 파업 복귀 후 현업 직원에 대한 감시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알렸다.

    • 오후 2시, 서울역광장에 3,0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인 가운데 ‘직권중재 철폐, 대량징계 분쇄, 정기단협 승리를 위한 철도노동자총력결의대회’를 개최하였다.

    • 철도공사의 대량 징계와 고소·고발에 대응하기 위해 전 조합원 연대책임 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 철야농성을 진행 중인 전국전기지부가 오전 11시 서울전기사무소 앞에서 '부당징계 철회, 현장탄압 분쇄 서울지역 전기조합원 결의대회'를 조합원 3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하고, 현장투쟁을 결의하였다.

      전국의 차량지부가 1일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 서울차량지부와 수색차량지부는 지부총회를 통해 23일부터 무기한 ‘작업거부투쟁’을 시작함. 제2차 작업거부 투쟁이 시작하였다.

    • 부산차량지부에서 무기한 작업거부투쟁을 시작하였다. 수도권 전동차를 정비하는 4개 소속지부에서 임시사업(주기적-정기적으로 정비하는 업무를 제외한 업무) 작업 거부를 시작하였다.

    • 청량리차량지부와 동해차량지부 무기한 작업거부투쟁을 시작하였다.

    • 서울지역 4개 전동차지부가 무기한 작업거부투쟁을 시작하였다.제천차량지부의 제천조차장이 규정검수투쟁을 벌였다. 전국시설지부가 간부회의를 통해 다음달 1일부터 야간작업 거부를 결의하였다.

    • 가야차량지부와 대구차량지부가 작업거부투쟁을 시작하였다.

    • 30일 저녁 9시부터 이날 오전 11시까지 공사측과 밤샘 교섭을 진행한 결과 정기단협안에 대해 잠정합의하였다.

    • 정기단협 잠정합의안에 대해 지방본부별 확대쟁대위원회를 열어 승인 여부에 대한 표결을 부친 결과 재적인원 145명 중 121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 91명 반대 21명으로 잠정합의안을 가결시켰다. 이에 따라 철도 노사는 오후 7시께 조인식을 갖고 2005년 정기단협을 체결했다.

    • 3·1 총파업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4월 6일 자진출두한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구속 수감되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26명 가운데 3명은 구속수감되고, 23명은 모두 불구속 처리돼 석방되었다.

    •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조합원 25,351명 가운데 21,370명(84.3%)이 참여해 13,207명(61.8%)의 찬성으로 단체협약이 인준되었다.

    3. 결과와 의미

    3월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 파업은 2005년 철도공사 출범 이후 최초로 전개된 파업이었다. 파업으로 노조 간부 및 적극 가담자 395명이 징계(파면 6, 해임 3, 정직 55, 감봉 109명 등)를 통한 탄압을 받았다. 한편 파업 이후 진행된 3월 31일 교섭에서 노조의 정기단체협약 요구안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루어져 공사 전환 이후 정부의 ‘공공부문 경영합리화’ 방침 아래 추진되어온 구조조정을 일정하게 막아내고 인력 충원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구체적으로는 노사 합의에 따라 ‘공공철도’와 관련, △ 교통약자의 철도이용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 할인제도 개선 △ 청소년 할인제도 유지 △ 저출산 해소에 기여하기 위해 어린이 할인제도 확대 추진 △ 철도 서비스 이용자 참여 확대 및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용자대표 참여방안 강구 △ ‘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과 개혁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하였다. 또 인력 충원과 관련, 2004년 12·3 특단협 합의에 의한 830명 현장 소요인력을 공사 자체에서 상반기 내 충원(재배치)하되 신규사업 소요인력과 운수분야 소요인력을 감안해 직무분야별 인원은 노사협의를 통해 확정키로 하였다. 해고자 원직 복직과 관련해서도 12·3 특단협 합의에 따라 철도구조개혁과정에서 발생한 철도해고자 복직방안에 대해 노사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복직문제를 논의키로 하였다. 다만 철도공사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진행된 KTX승무원 투쟁은 합의되지 못함으로써 이후 전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지부는 이후 장기간 파업과 농성을 전개하게 되었다.

    ※ 참고자료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6년 사업보고』, 2007.
    - 전국철도노동조합, 『4차 확대쟁의대책위원회 회의자료』, 2006.03.21.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6년 정기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06.03.31.
    - 전국철도노동조합, 『1차 임시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06.05.04.
    - 전국철도노동조합, 구술자료집 (서울차량 전병춘지부장, 부산차량 한성욱지부장, 수색차량 부곡분소 유창욱 부지부장)
    - 노동자역사 한내, 『철도파업과 필수공익사업장의 문제점 토론회 자료집』, 민주노총법률원·공공연맹, 문서번호 HNi378, 2006.03.29.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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