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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년 ‘철도 민영화 반대, 특별단체협약 쟁취’ 2.25 파업

    2002년 2월 25일 철도노조가 발전산업노조, 가스공사노조와 함께 기간산업 민영화 저지를 위한 공동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54년 만에 실시된 직선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민주집행부는 김대중 정부의 철도 민영화 구조조정 공세에 맞서 ‘민영화 저지, 노동조건 개선’을 내걸고 불법 파업 공세와 탄압 가운데 5개 지방본부의 거점 집결 농성파업의 방식으로 2월 25~27일 3일간의 총파업을 진행하였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사흘째인 2월 27일 △ 철도의 공공적 발전을 위한 공동 노력 △ 24시간 맞교대 철폐 및 3조 2교대 시행과 주휴일 보장 등 근무형태 개편과 인력 충원 등 노동조건 개선 △ 해고자 복직 노력 등을 내용으로 하는 ‘2·27 합의’가 이뤄짐으로써 마무리되었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파업 투쟁의 전개
    결과와 의미

    1. 배경

    1) 김대중 정부의 철도 민영화 정책

    1997년 IMF 위기 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강하게 펼쳐나갔다. 정부가 사용자인 공공부문에서 구조 개악이 실행되어 포항제철,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등 주요 공기업이 민영화되었으며 교통, 가스, 전력 등의 민영화가 연이어 추진되었다. 2001년 1월 20일 김대중 대통령은 건설교통부 업무보고 회의에서 철도청 운영 적자를 명분으로 “어느 나라에도 철도가 국영화된 나라는 없다”며 철도구조개혁법을 마련해 연내 반드시 철도 민영화를 이루라고 지시한다. 그해 2월 건교부는 철도산업구조개혁기본법안을 입법 예고했고 8월에는 건설교통부,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의 의견을 종합하여 최종 기본법안을 발표하였다. 12월 4일에는 정례국무회의를 열어 철도 민영화 관련 법안을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은 ‘철도산업발전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안’으로 기존의 철도청과 고속철도공단을 해체 통합, 철도시설의 건설과 자산관리는 2003년 7월 발족하는 철도시설공단이 맡고, 운영은 2003년 7월 전액 정부출자로 철도운영회사를 만들어 넘긴 뒤 단계적으로 주식매각을 통해 완전 민영화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2) 철도 현장의 열악한 노동조건

    1996년 이후 7,7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철도청 경영개선이라는 사유로 감축되었다. 부족한 현장인력으로 인해 2001년 한 해에만 34명의 철도노동자가 직무 도중 사망했고 ‘철도공무원 총정원제’에 묶여 정규직 고용 대신 비정규직으로 현장이 채워졌다(1996년도에 911명이던 비정규직이 2001년 6월에 1,470명). 24시간 맞교대, 월 270시간의 장시간 근무와 주휴일도 없는 맞교대, 교번, 일근이 혼재된 불규칙한 근무 시스템도 여전했다. 24시간 맞교대 근무자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63시간(월 270시간)으로 한국 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 주 47.8시간(월 204.8시간, 2000년 현재)보다 무려 16.2시간이나 많았다. 또한 열차 승무원이나 시설원의 경우는 주당 노동시간이 75시간 이상(월평균 300시간)을 넘는 경우도 허다했다.

    3) 해고자

    노동조합의 민주화와 ‘8시간 노동, 근로기준법 준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 1988년과 1994년 파업 투쟁에서 해고된 노동자 58명에 대해 철도노조는 해고자 전원을 기능직 10급으로 특별 채용해 복직시켜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2. 파업 투쟁의 전개

    1) 2001~2002년

    • 민주집행부가 개최한 첫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전 어용집행부가 함께 한 2000년 12월 민영화 수용과 인원 감축안을 포함한 ‘노사정 합의문’이 무효임을 선언하고, 철도 민영화 정책에 맞서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 철도산업 민영화 관련 법안 입법 철회와 해고자 복직를 골자로 한 특별단체교섭 요구안을 철도청에 제출하였다.

    •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 신청을 접수시켰다.

    • 중앙노동위원회가 철도노조가 제출한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행정지도를 내렸다.

    • 쟁의대책위원 결의대회에서 ‘2002년 2월 25일 파업안’을 제출하였다.

    • 직종별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 투쟁기금 마련을 위한 조합비 0.5% 인상안 총투표에 조합원 95% 이상이 참여하여 70%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 권역별 총파업 출정식을 진행하였다. 서울역 광장을 비롯해 대전역, 영주역, 부산역, 순천역 등에서 총 8,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혈서와 간부 삭발식이 진행되었다.

    • 22~24일. 철도청과 연속 교섭을 진행했지만 결렬되었다.

    • 오전 4시. 총파업 선언에 이어 건국대에 집결한 서울지방본부 소속 조합원 6,500명은 오전 7시 대운동장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갖고 ‘철도 민영화 저지,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였다. 노조 집행부는 공권력 투입에 대비, 연행시 행동지침 등을 조별로 전파하며 지역별 거점에서 농성 파업을 진행하였다.

    • 파업 2일차. 서울지역 건국대 5천명, 부산지역 부산대 2천 명, 영주지역 영주공설운동장 1천5백 명, 대전지역 충남대 1천5백 명, 순천지역 전남대 3백 명이 재집결하는 등 5개 지역에서 파업 농성을 지속하는 가운데 파업 참가율은 교대 근무자 가세로 26일 파업참가자는 총조합원 23,000여 명 중 12,000여 명(52.17%)으로 집계되었다.

    2)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저지 공동투쟁본부(공투본)

    • 동구민회관에서 산하 조합원 등 250명이 참여한 가운데 기자회견과 출범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공투본에는 민주노총 공공연맹 산하 한국발전산업노조와 한국전력기술노조, 한국지역난방공사노조, 고속철도노조와 함께 한국노총 산하 전국철도노조, 한국가스공사노조 등 7개 노조가 참가했다.

    • 14∼15일. 대표자회의와 수련회를 갖고 민영화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 통과될 경우 공공부문 노조가 공동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 양대 노총과 민중연대 등 42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해외매각 저지 범국민대책위’(범대위)가 결성되었다.

    • 조합원 1만 5천 명이 모인 가운데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중단을 촉구하는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27∼29일. 총파업 찬반투표가 실시되어 공투본 소속 7개 노조 4만여 조합원 중 79.17%가 투표해 74.66%가 파업에 찬성했다.

    • 공투본과 범대위는 정부가 2월 임시국회에서 철도·가스민영화법안 처리를 추진하려 한다며 ‘공공노동자 2차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 민주노총이 4시간 연대 총파업에 들어가 서울 종묘공원에서 조합원 3천 명이 참석한 가운데,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를 열었으며, 전국적으로 울산, 광주, 대전, 청주 등 전국 22곳에서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가 열렸다.

    3. 결과와 의미

    전면 총파업 3일차인 2월 27일 오전 아침 6시 40분 철도청과 특별단체교섭에 합의해 철도노조는 오전 7시부로 파업이 종료됨을 선언하고, 오후 3시까지 조합원 전원 업무복귀에 나서라는 ‘업무복귀 명령’을 내렸다. 노사는 민영화 문제에 대해 “철도산업의 공공적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고 합의했으며, 3조2교대 근무제와 관련해서는 6개월 안에 경영진단을 통해 근무형태 개선에 따른 추가 필요인력을 산출한 뒤 2004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키로 했다. 해고자 복직문제는 노사정 합의를 통해 최선을 다하며, 구체적 시행방법을 9월말 이전에 한국노총, 노사정위원회, 철도 노사가 합의해 처리하기로 했다. 3월 13일 특별단체협약 잠정합의안에 대해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조합원 20,697명 가운데 18,627명이 투표해 13,474명(72.3%)이 합의안에 찬성했고 4,906명(26.3%)이 반대해 잠정합의안이 가결되어 2·25 파업은 최종 마무리되었다.

    철도노조를 포함한 가스공사노조, 발전사업노조의 공동파업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던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공세를 막아낸 파업이었다. 또한 민영화 정책의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면서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켰다. 1997년 1월 노동법 개악에 맞선 민주노총 총파업 이후 처음으로 노동자들이 잘못된 정부 정책을 좌절시켰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오랜 어용노조의 역사를 청산하고 민주노조의 깃발을 세운 지 1년도 안 되는 신생 노조들이 사상 처음으로 자체 파업과 국가기간산업 공동파업을 성사시켰고 파업 투쟁 이후 철도노조와 가스공사노조가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변경하게 되었다. 노동조건 개선과 관련해 초장시간 근무와 주휴일도 없는 맞교대 근무 시스템이 마침내 3조2교대를 도입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인력 충원과 함께 초장시간 노동이 줄어들게 되었고 해고자 복직과 관련해 노조가 양보한 '10등급 채용'에 대해 노사정 합의를 끌어내 해고자 복직 근거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합법파업을 불가능하게 하는 직권중재제도를 악용한 불법파업 규정 및 탄압은 여전했다. 철도청은 김재길 전 위원장을 비롯해 21명을 파면했으며, 10여 명이 구속돼 집행유예 등의 형을 받았고, 186명이 고소·고발되어 100여 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조합비 또한 가압류되었다. 파업 복귀 후의 철도청 현장 탄압 저지와 2·27 합의 이행을 위한 철도노조의 투쟁이 집회, 단식, 농성의 형태로 2002년 내내 지속되었다.

    ※ 참고자료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1년 정기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01.05.30.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2년 사업보고』, 2003.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2년 임시대의원대회 회의자료』, 2002.11.22.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2002년 민영화 저지 및 공공철도 건설을 위한 정책사업 보고』,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i86577.
    -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 『국가기간산업 민영화(사유화) 저지를 위한 공투본의 투쟁경과와 평가』,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i2067, 2008.07.14.
    -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저지를 위한 공투본의 투쟁 평가와 전망모색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02.10.9.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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