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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철도노조의 민영화·인력감축 노사정 합의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의 타개책으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 사회적으로 추진하였다. 철도의 경우, 애초 공사화에서 운영부문의 민영화로 선회하고 1999년 5월 정부방침을 확정한 이후 2000년 하반기 정부의 철도 민영화와 인력감축 구조조정 공세가 구체화되었다. 이미 철도청과 대규모 인력감축에 합의한 전국철도노조도 민영화 반대 투쟁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고 12월 15일 총파업 돌입을 발표했다.

    이에 직선제공투본은 당면한 민영화 저지 투쟁에 집중하기로 하고 철도노조의 투쟁계획에 복무하면서도 ‘철도노동자 투쟁승리 비상지휘부’ 구성을 통해 실질적 총파업 실현을 위한 현장 준비를 병행했다. 그러나 전국철도노조는 파업 예고 직전 12월 10일 노사정위원회에서 인력감축과 민영화에 합의해버렸다. 직선제 공투본은 철도노조의 합의안을 규탄하고 공투본 소속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해 반대 85%로 합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이후 2001년 1월 30일 ‘생존권 사수와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철도노동자 투쟁본부’가 결성되어 본격적인 노동조합 각급 선거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경과
    결과와 의미

    1. 배경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정부는 기업·금융·노동·공공부문의 4대 구조조정을 앞세워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사회 각 부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를 전면화했다. 이중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은 ‘대규모 인력감축과 민영화’로 요약되었고 철도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월 제2차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해 2001년 철도청 공사화 방침을 확정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에는 방향을 선회해 민영화 방안을 정하고 1999년 2월 중앙행정기관 경영진단 및 보고서 발표에 이어 마침내 1999년 5월 국무회의에서 ‘철도 민영화 및 공단화’ 정부 방침을 확정했다.

    정부 방침은 2001년까지 철도 기반시설과 운영을 분리, 철도청의 건설부문은 고속철도건설공단과 통합해 가칭 ‘철도건설공단’으로 전환하고, 운영부문은 민영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2000년 4월에 철도 민영화 세부방안 및 정부 방침을 결정하고, 이후 정기국회에서 민영화 관련 법령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정비창과 차량 분야를 중심으로 대규모 감원과 용역화, 외주하청이 진행되며 승무(기관사)분야는 부기관사 폐지와 1인 승무제 도입 등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존권 위협이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이해관계 당사자와 협의를 통해 철도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사실상 한국노총과 어용 철도노조의 역할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한편 전국철도노조는 1999년과 2000년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철도청의 인력감축에 동의해주고 ‘분할매각은 반대하나 통째 민영화는 찬성’하는 파업을 하겠다는, 그야말로 앞뒤가 안 맞는 행보를 가져갔다. 이는 2001년 노조 위원장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인력감축과 민영화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 경과

    • 전국철도노조가 철도청과 노사협의에서 1999년 인력감축분 1,506명에 대해 합의함. 이에 따라 영업 분야 936명 등 운수·운전 분야를 중심으로 일용직 채용과 외주화가 추진됨.

    • 철도청이 1인승무제 도입에 따른 운전 분야 1,481명, 차량 분야 397명 등 총 2,346명의 추가 인력감축안을 발표함. 정부는 이 감축 규모에 맞춰 2001년 철도청의 인건비 예산을 미리 삭감해 정책 이행을 강제하고, 철도청은 이에 발맞춰 7월 31일 자로 현장 인력의 정원을 조정함. 이에 따라 운전 분야는 1인승무제와 준비기관사의 용역화, 차량 분야는 검수주기 조정·외주화·정비창 분할 매각, 운수 분야는 역무 자동화, 전동차 및 화물열차 차장 생략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름.

    • 전국철도노조가 제134차 중앙위원회를 열고, 기존 ‘민영화 저지 비상대책위원회’의 명칭을 ‘인력감축 및 민영화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로 변경하고 투쟁을 선언함.

    • 직선제공투본이 ‘하반기 투쟁방침’을 발표함. 공투본은 방침에서 “각 직종별로 진행되는 인력감축에 공동 대응하고, 철도노조의 투쟁을 강제해 나가자”라면서, 각 직종 대표들이 참여하는 가칭 ‘인력감축 저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함.

    • 전국 기관차지부장회의를 열어 인원 감축 저지를 위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전국철도노조와 결합하여 투쟁하기로 의견을 모음.

    • 전국운수협의회가 성명을 발표하여 “매표창구 외주화 및 일용직화, 수도권역 대매업소 위탁, 중간역 신호장화, 화물열차 및 전동차 차장 생략 등 국민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인력감축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함.

    • 차량지부들이 ‘전국차량지부협의회’를 결성하고, 검수주기 조정과 근무체제 변경, 인력감축 등에 단호히 대응할 것을 선언했다. 차량협의회는 운전·운수 등 타 직종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겠다는 방침도 함께 밝힘.

    • 직선제공투본이 대전에서 집행위원, 지역대표, 지부장들이 참여한 투쟁 기획회의를 개최함. 철도노조의 투쟁계획에 결합하되, 독자적인 실천을 통해 민주진영의 지도력을 확보하자는 기본방침을 세움. 공투본은 이날 회의에서 △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철회 △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 △ 해고 및 전출자 원직복직 등의 대정부 요구안과 함께, △ 조직징계자 복권 △ 서울지방본부 및 사고지부 정상화 △ 인력감축 관련 교섭계획 및 대책 공개 △ 총파업 일정의 세부 내용 공개 등의 철노에 대한 요구안도 채택함.

    • 대전에서 ‘철도노동자 투쟁승리를 위한 비상지휘부(가칭) 전원회의’가 소집됨. 이날 회의에서 ‘철도노동자 투쟁승리를 위한 비상지휘부’의 구성에 합의함.

    • 전국철도노조가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파업 찬반투표 일정 연기와 투쟁기금 조성 방안을 의결함. 파업 찬반투표는 선전 및 홍보 부족을 이유로 논란 끝에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로 일주일 연기됨. 투쟁기금은 1단계로 조합원 1인당 3만 원씩 걷는 안이 통과되었고, 2단계로는 총 50억 원의 기금을 마련한다는 방안이 가결됨. 희생자 보상을 위한 3단계 안으로 조합비 2% 인상안도 상정되었으나 부결됨.

    • 철노 비상대책위원회 중앙집행위원회가 예정된 조합원 총투표에서 파업 찬반투표와 투쟁기금 안을 분리하기로 결정함.

    • 전국철도노조가 서울역에서 1만여 명의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인력감축 저지와 민영화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총력투쟁 선포대회를 개최함.

    • 27일~29일 3일간 총파업 찬반투표가 진행됨. 24,650명의 조합원 중 94%가 참여하고 81%의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됨.

    • 비상지휘부 1차 운영위 회의를 열고 상임의장에 김재길 청량리기관차지부장, 공동의장에 김도환 서울차량지부장을 비롯한 정비창 및 운수 등 3인, 집행위원장에 철민추 사무국장을 선출하고 체계를 정비함.

    • 전국철도노조가 ‘투쟁명령 제7호’를 통해 ‘12월 8일 09시를 기해 2차 준법운행 및 잔업 거부 투쟁에 돌입’ 지침을 내림.

    • 전국철도노조가 한국노총에게 노사정위에 복귀해 달라고 요청함.

    • 전국철도노조와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협의를 진행해 02시 30분 인원감축과 철도민영화 수용을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 합의문에 합의함.

    • 전국철도노조가 중앙비대위를 개최해 찬성 31표, 반대 16표로 노사정합의문을 통과시킴. 이에 따라 예정된 파업을 철회하고 중앙비대위도 해산함.

    • 직선제공투본이 성명서를 발표해 철도노조의 노사정합의문 무효와 조합원 찬반투표를 선언함.

    • 17일까지 직선제공투본이 노사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해 투표율 84%에 반대 85%로 합의안을 거부함. 이 투표에는 승무와 공투본 소속 단위 등 1개 지방본부, 36개 지부 총 9,036명의 조합원이 참여함.

    3. 결과와 의미

    전국철도노조의 인력감축과 철도민영화 반대투쟁은 한판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전국철도노조는 12월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11월 10일 제25차 노사정위에서 1999년도 인력 감축분 1,506명에 합의했다. 또한 12월 총파업 일정이 다가오자 입법절차 미비로 철도 민영화 일정이 2002년 이후로 미뤄지는 상황을 핑계로 당장의 총파업이 의미가 없고 ‘민영화는 대세’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공공연히 표명했다. 또한 일회성 조합원 동원 집회 이외에는 별다른 현장 투쟁 조직화 사업 없이 노사정위원회 협의와 정부관계자 면담에 집중했다. 또한 하반기 투쟁을 집중해야 할 시기에 가장 규모가 큰 서울지방본부 대의원들을 제명해 사고 조직으로 전락시켰다. 전국철도노조는 민영화 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의 통제권을 유지하고자 했지만 하반기 투쟁 과정에서 오히려 현장간부들과 조합원들의 불신만 커지게 되었고 반면 철도노조의 모든 행사와 집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직선제공투본은 조합원들과의 접점을 넓혀가며 신뢰를 얻어갔다.

    결국 사실상 항복문서와 다름없는 12·10 노사정 합의문을 통해 어용 철도노조는 인력감축은 전면 수용, 철도민영화는 조건부 수용에 합의하며 또 다시 조합원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당장 인력감축의 경우 1999년 운수 분야에서 총 674명, 승무 분야에서는 NCD 1인승무 도입으로 42명, 시설 분야는 선로 보수체계 개편으로 312명, 차량 분야는 일용직화 및 검수 주기 조정으로 192명, 전기 분야는 변전소 무인화 및 외주화로 47명, 간접 지원인력은 총 517명 감원이 확정되었다. 2000년 인력감축은 더 심각했다. 기관차 1인승무 합의에 따라 여객열차 승무원은 497명, 새마을동차와 전기기관차 67명, 디젤기관차 430명 감축이 현실화되었다. 이밖에 차량분야는 검수 주기조정, 외주화 및 일용직화, 검수승무원 생략 등으로 634명, 전기분야는 주요간선 CTC 확충 등으로 178명 감원, 시설분야는 건널목 운영개선 등으로 182명이 감원이 앞당겨졌다.

    한편 직선제공투본은 당면한 인력감축과 민영화 저지투쟁에 대해 철도노조의 투쟁에 최대한 복무하면서도 독자적인 실천이 요구된다며 별도의 대책위와 비상지휘부를 구성해 철도노조 주요 회의에서 투쟁을 선동하고 현장순회와 『바꿔야 산다』 기관지 배포를 중심으로 한 현장 선전 등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조직해나갔다. 그러나 철도노조 중앙비대위 내에서의 수적 열세 등의 한계로 인해 철도노조의 기만적 노사정합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노사정합의 직후 직선제공투본은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소속 지방본부와 지부 소속 9,036명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노사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해 투표율 84%, 반대 85%로 조합원 행동을 조직했으며 이러한 흐름은 해를 넘긴 2001년 민주노조 위원장 선거 투쟁으로 이어졌다.

    ※ 참고자료

    - 김병구, 「철도 민주노조 건설의 역사 - 저항과 연대·헌신의 역사 : 94년 6·23 파업 이후부터 2001년 선거투쟁까지」,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직선제공투본 투쟁 자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모음 번호 HNf2131·HNf2132·HNf2133·HNi69828, 2000.
    - 『직선제공투본 선전물 모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i70711, 2009.10.30.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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