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정부는 기업·금융·노동·공공부문의 4대 구조조정을 앞세워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사회 각 부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를 전면화했다. 이중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은 ‘대규모 인력감축과 민영화’로 요약되었고 철도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2월 제2차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해 2001년 철도청 공사화 방침을 확정했다. 그러나 같은 해 7월에는 방향을 선회해 민영화 방안을 정하고 1999년 2월 중앙행정기관 경영진단 및 보고서 발표에 이어 마침내 1999년 5월 국무회의에서 ‘철도 민영화 및 공단화’ 정부 방침을 확정했다.
정부 방침은 2001년까지 철도 기반시설과 운영을 분리, 철도청의 건설부문은 고속철도건설공단과 통합해 가칭 ‘철도건설공단’으로 전환하고, 운영부문은 민영화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2000년 4월에 철도 민영화 세부방안 및 정부 방침을 결정하고, 이후 정기국회에서 민영화 관련 법령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정비창과 차량 분야를 중심으로 대규모 감원과 용역화, 외주하청이 진행되며 승무(기관사)분야는 부기관사 폐지와 1인 승무제 도입 등 강력한 구조조정과 생존권 위협이 현실화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이해관계 당사자와 협의를 통해 철도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사실상 한국노총과 어용 철도노조의 역할은 들러리에 불과했다.
한편 전국철도노조는 1999년과 2000년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철도청의 인력감축에 동의해주고 ‘분할매각은 반대하나 통째 민영화는 찬성’하는 파업을 하겠다는, 그야말로 앞뒤가 안 맞는 행보를 가져갔다. 이는 2001년 노조 위원장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인력감축과 민영화 문제에 대해 어떻게든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