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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 직선제공투본 부당징계 저지 투쟁

    2000년 1월 대법원 판결 직후 철도 민주노조진영은 직선제공투본을 구성해 전국철도노조의 불법적 대의원선거·대의원대회 저지 투쟁, 66일간의 본조 사무실 점거 농성, 용산 본조 앞 연속 집회 개최 등 직선제 요구 투쟁에 집중했다. 3월 중순 이후 투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4·13 총선이 끝나자 철도청과 철도노조의 징계 탄압이 본격화되었다. 공투본 소속 핵심 간부, 조합원들에 대해 표적감사와 징계위 개최를 통해 대규모 해고와 비연고지 전출, 조합원 제명이 자행되었다. 4월 20일 부산정비창본부를 시작으로 7월까지 중징계 13명, 경징계와 비연고지 전출 40명, 소내 부당전출 9명, 구속자 3명이 발생했다. 전국철도노조도 44명을 제명 징계했다. 이에 직선제공투본은 ‘철도청장 비리 규탄과 부당징계 철회 조합원 결의대회’를 잇따라 열고 몸벽보 착용 준법투쟁, 40일간의 용산철탑 고공농성, 명동성당 농성과 12일간의 단식투쟁으로 저항했다.

    직선제공투본은 잇따른 농성과 단식, 항의 집회를 6월까지 마무리하고 투쟁의 진로를 모색했다. 7월 1일 회의를 통해 ‘민주철노 건설과 철도민영화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로 명칭을 변경하고 2기 공투본 체제를 갖췄다. 이후 서울역에서 규탄 집회를 이어가고 기관지 『바꿔야산다』 전국 순회 배포를 통한 현장 조직력 복원을 시도했다.

    목차
    처음으로
    경과
    결과와 의미

    1. 경과

    1) 주요 일지

    • 철도청이 지난 ‘3.7 임시 대의원대회’에 연가를 내고 참여한 공투본 소속 조합원들에 대해 인사 조치를 하라는 공문을 각 소속 기관에 내려보냄. 대상은 부산 52명, 서울 21명, 대전 1명 등 총 74명이었음.

    • 철도청 부산정비창이 징계위원회를 열어 3.7 대의원대회 저지 투쟁에 참가했던 조합원 8명을 비연고지로 전출시키는 등 부산정비창 비대위 소속 조합원 52명에 대한 인사 조치를 단행함.

    • 직선공투본 서울지역 확대 간부회의를 긴급 소집해 철도청 징계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해 현장투쟁을 위한 본조농성장 철수를 결정함.

    • 직선제공투본이 본조 농성을 마무리하고 서울역에서 조합원과 연대 단체 회원 4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철도청장 비리 규탄 및 노조 탄압 분쇄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명동성당까지 거리행진을 벌임.

    • 농성천막 강제 철거와 구로차량 조합원 6명 직위해제 철회를 위해 구로차량사무소를 항의 방문함. 항의방문 과정에서 관리자들과 충돌이 발생해 공투본 지도부 2명이 고발당하고 이후 구속됨.

    • 부산정비창 비대위, 부산지역 공투본이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부창 조합원과 가족대책위 20여 명을 포함한 300여 명이 한나라당 부산시지부로 몰려가 시위를 벌임. 부산역 3층 대합실에서 가족대책위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고, 공투본 조합원들은 출발하는 열차에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스티커를 부착하는 항의 투쟁을 진행함.

    • 직선제공투본과 ‘철도 민영화 저지와 민주노조 운동 탄압 분쇄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공동 주최한 ‘철도청장 비리 규탄 및 노조 탄압 분쇄 투쟁 결의대회’가 5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역광장에서 열림. 집회 후 직선제공투본 강재한 집행위원장과 이정순 대변인이 ‘부당징계 철회 및 노조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수색기관차지부 사무실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함.

    • 부산철도차량정비창 징계위원회가 김기태 비대위원장을 포함한 6명에 대해 무단결근을 이유로 징계 심의를 강행함. 이에 맞서 부산지역 공투본 조합원 200여 명이 아침부터 부산정비창 정문에 모여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전개함.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김기태 비대위원장 등 6명은 저항의 의미로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음. 조합원들은 가족들의 사업장 출입을 막고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려는 청원경찰들과 격렬한 몸싸움을 벌임. 낮 12시 부산정비창 내 각 공장에서 조합원 700여 명이 꽹과리와 북을 두드리며 정문으로 집결, 저지투쟁을 전개해 이날 징계위원회가 무산됨.

    • 철도청이 연가 사용 허가 없이 하루를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김기태 비대위원장 등 간부 6명에게 각각 1~3개월 감봉 징계와 비연고지 전출 징계를 내림.

    • 오전 10시, 징계자 가족 4명이 “부당한 인사 조치, 비연고지 발령 철회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정비창 내 30미터 높이의 보일러 굴뚝에 올라가 시위를 벌이기 시작함. 동시에 가족대책위 30여 명은 정비창장실을 점거하고 부당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함. 징계자 6명은 쇠사슬을 몸에 감고 정문 앞에서 시위를 이어감. 조합원 700여 명은 굴뚝 앞에서 중식 집회를 열었고, 오후 6시 퇴근 후에도 다시 집회를 개최함.

    • 서울차량지부가 “부당징계 철회하라”는 구호가 적힌 몸벽보를 착용하는 준법 투쟁을 시작함.

    • 철도청이 경징계 및 전보조치 대상자 16명에 대한 징계위를 개최함.

      4월 27일 – 직선제공투본이 서울역에서 ‘철도청장 비리 규탄 및 노조 탄압 분쇄를 위한 3차 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함.

    • 부산정비창 비대위가 철도청의 징계에도 불구하고 지방본부 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김기태 비대위원장을 새 위원장으로 공식 선출함.

    • 부산정비창 정문 민주광장에서 노동절 집회를 개최함. 부산차량, 가야차량, 대구차량 등에서 조합원들이 참가했고, 학생, 공대위, 시민단체, 일본국철노동자, 정비창 가족대책위 가족 등 600여 명이 참여함.

    • 부산 서면에서 ‘부당징계, 부당전출 철회를 위한 가족 및 부산시민 결의대회’가 열림.

    • ‘가족의날’을 맞아 부산정비창 노조원과 가족 1천여 명이 전출자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비창 담벼락 위 녹슨 철조망에 2천여 개의 노란 리본을 매달음.

    • 전국철도노조가 공투본소속 조합원 및 임원 중 40명을 추가로 조직징계 제명함.

    • 철도청이 재차 징계위원회를 열고 전출 명령을 받고도 전출지로 출근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김기태 위원장과 이용석 조직국장을 파면함.

    • 김기태 위원장의 출근을 막는 경비인력에 맞서 조합원 400여 명이 규탄 집회를 열고 몸싸움을 벌임.

    • 김기태 위원장과 이용석 조직국장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됨. 철도청은 조합원 23명을 상대로 ‘업무실적 미달 손실 추정액’이라는 명목으로 총 4억 7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지부장 및 조합원들의 부동산과 급여를 가압류 조치함.

    • 직선제공투본에 대한 전국철노의 조직징계가 법원의 판결로 효력이 정지됨. 서울지방법원은 ‘조합원제명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본안 판결 확정시까지 조합원제명 결의에 기한 각 징계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라고 판결해 3월 7일과 5월 24일 철도노조에 의해 제명되었던 총 84명의 조합원 가운데 소송을 포기한 2명을 제외한 82명 전원이 조합원 자격을 회복함.

    2) 용산철탑 40일 농성과 명동성당 12일 단식농성 투쟁

    • 오전 10시, 공투본 지도부의 김병구 조직국장과 이종선 선전국장 2명이 100여 명의 공투본 조합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산차량사무소 구내의 30미터 높이의 조명용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에 돌입함. 이후 매일 집회가 철탑 아래 마당에서 진행됨.

    • 새벽 4시 30분경 철탑 아래서 단식농성에 들어간 공투본 지도부 등이 있던 농성 천막에 철도공안원 등 150여 명이 난입해 천막을 부수고 농성자 8명을 강제 연행함. 연행 소식이 알려지자 공투본 조합원 50여 명은 공안 사무실이 있는 서울역 구내에 집결하여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감. 농성 조합원들이 서울역 구내에 스티커 부착 투쟁을 전개하고 조합원들의 수가 점차 늘어나자 철도청은 밤 9시경 연행자들을 전원 석방함.

    • 3·7 울진 대의원대회 참가 조합원 78명의 징계 회부 이후 공투본 지도부 가운데 중징계 대상자 9명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개최됨. 이영익 등 공투본 지도부 4명은 징계위 출석을 거부하고 서울역 광고탑 위에 올라가 점거 농성을 벌임. “뇌물수수 부당징계 철도청장 구속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고 출동한 공안원들과 대치하면서 5시간 동안 시위를 이어갔고 광고탑 아래 서울역광장에서는 조합원 50여 명이 철도청을 규탄하는 집회를 동시에 진행함. 한편 이날 징계위원회의 결과는 파면 5명, 해임 3명, 정직 3개월 1명이었음.

    • 철도청이 철탑 농성장 주변을 봉쇄하고 조합원들의 접근과 농성자 물품 보급을 차단하자 고공농성자 2명이 아침 10시를 기해 단식을 선언함. 단식 선언 1시간 만에 철도청이 태도를 바꿔 봉쇄를 해제함.

    • 직선제공투본이 ‘부당징계 철회, 비리 철도청장 처벌 1차 투쟁주간’을 선포하고 서울역 단식을 비롯해 청와대 및 정당에 제출할 서명운동, 기관차승무 및 차량 조합원들의 리본과 몸벽보 착용, 매일 서울역 집회 및 대시민 거리 선전전 등을 주요 투쟁지침으로 발표하고 현장에서는 차량 조합원을 중심으로 중식 집회, 지부 간부 동조 단식, 조합원 점심 거르기 등이 전개됨.

    • 직선제공투본이 MBC 방송 ‘성공시대’ 촬영을 위해 서울정비창을 방문하려던 정종환 철도청장의 출입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임. 공투본 소속 해고자와 조합원 10여 명은 ‘뇌물수수·노조탄압 철도청장 구속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철도청장이 탄 승용차를 가로막으며 방송촬영을 무산시킴. 이후 방송국에 항의 서한을 발송하고 항의 방문을 진행함.

    • 철탑 고공농성자 2인이 단식투쟁에 들어감.

    • 서울역에서 공투본 조합원과 해고자 가족들, 공공연맹 조합원 등 150여 명이 모여 ‘철노민주화와 부당징계 철회를 위한 6월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집회를 마친 대오는 시민 선전전과 구호를 외치며 명동성당까지 행진함. 명동성당에서 약식집회를 마친 공투본 지도부 이영익, 이종열, 이종규, 권연영, 김용욱 등 5명이 작업복에 붉은 조끼를 입고, 쇠사슬을 서로의 몸에 감은 채로 노상 단식농성에 들어감.

    • 철탑농성 40일차, 단식농성 11일차, 김병구·이종선 두 명이 의사의 권고에 따라 농성을 끝내고 철탑을 내려옴.

    • 명동성당 지도부 단식투쟁이 종료됨. 이날 오전 11시, 명동성당 농성장에서 150여 명의 조합원이 참석한 가운데 ‘단식투쟁 계승 및 민주철노 쟁취 결의대회’가 열렸으며, 12일간의 투쟁을 마무리함.

    2. 결과와 의미

    전국철도노조는 3·7 대의원대회에서 마지못해 2001년 직선제 선거를 결정했으나 실행 여부는 미지수였다. 이에 직선제공투본은 본조 점거농성을 유지하면서 ‘대의원 100명당 1명 선출, 규약개정 후 즉시 총선거 실시’ 등의 요구안을 가지고 철도노조와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무산되었다. 이어 4월 15~18일 8개 지방본부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5개 지방본부에 민주진영 후보가 당선되자 철도청과 철도노조는 강경 탄압으로 대응 기조를 전환했다.

    노조의 공식 활동을 보장받지 못한 채 개인 휴가와 업무외 시간을 통해 활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직선제공투본 소속 조합원들과 지도부에게 철도청은 ‘무단결근, 근무지 이탈’ 등의 사유를 들어 표적감사, 감시와 미행 이후 징계위를 열어 해고, 원거리 부당전출의 징계를 단행했다. 전국철도노조도 사전에 조합원 제명 징계를 진행해 철도청과 공모했다.

    4월 20일부터 부산정비창본부를 시작으로 본격화된 철도청과 전국철도노조의 징계 탄압에 맞서 현장 투쟁이 격렬히 진행되었다. 부산정비창본부는 부당징계자 쇠사슬 농성, 굴뚝 농성, 단식농성, 조합원 항의 집회를 연이어 개최했고 직선제공투본도 4~5월 3차례의 대규모 서울역 조합원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4월 말부터 철도청의 징계위원회가 연속적으로 열리자 이후 용산 철탑 고공농성, 명동성당 단식농성까지 선도적인 투쟁을 배치하며 무차별적인 징계 탄압에 저항했다.

    한편 직선제공투본 지도부 전원이 징계를 당하면서 급속하게 지도집행력을 상실하자 용산철탑 농성을 상징적 거점으로 삼아 5월 한 달 동안 흐트러진 조직력을 복구하고자 했다. 이 시기에 직선제공투본 산하 지부 및 비대위의 간부와 조합원 합동토론회, 철노 전국지부장회의 항의 방문, 공투본 주최 체육대회, 삼일회계법인 민영화 공청회 항의, MBC 앞 집회와 대국민 선전전, 공투본 해고자 활동기금 마련 이틀 주점 등이 전개되었다.

    직선제공투본은 연일 규탄 집회, 농성, 항의방문을 진행하며 징계 탄압에 대응했지만, 철도청의 징계를 무효화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였다. 철도노조의 공식조직과 체계가 아닌 직선제공투본은 총파업 등 강력한 압박 수단이 없었고, 결국 징계 저지 투쟁은 집회와 농성, 철도청장의 비리 폭로와 일부 현장의 준법투쟁 이상을 넘어설 수 없었다.

    결국, 6월에 접어들자 직선제공투본의 투쟁 동력이 떨어지면서 직선제공투본을 지켜내기 위해 조직을 재정비하고 집행력을 다시 구축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단식농성을 통한 선도적 투쟁을 감행했다. 철탑과 명동성당에서 투쟁이 이어지는 동안 징계를 받은 공투본 지도부의 소속 지부들은 대부분 새롭게 지부장을 선출하며 조직 재정비를 마쳤고 직선제공투본은 이후 투쟁의 진로를 모색했다. 7월 1일 회의를 통해 ‘민주철노 건설과 철도 민영화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로 명칭을 변경하고 2기 공투본 체제를 갖춰 하반기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 건설 투쟁을 진행하고자 했다.

    또한 징계를 통해 발생한 해고자들과 전국적으로 흩뿌려진 부당전출 징계자들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전국을 순회하며 현장 조합원과 만나 노조 민주화 투쟁을 알려내는 데 앞장섰다. 역설적으로 어용 철도노조와 철도청의 탄압이 도리어 수십 명의 민주노조 상근활동가들을 양산했고 이들은 철도 현장에 민주노조를 세우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참고자료

    - 이영익, 「새로운 역사 공투본 투쟁」,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김병구, 「철도 민주노조 건설의 역사 - 저항과 연대·헌신의 역사 : 94년 6·23 파업 이후부터 2001년 선거투쟁까지」,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직선제공투본 투쟁 자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모음 번호 HNf2131·HNf2132·HNf2133·HNi69828, 2000.
    - 『직선제공투본 선전물 모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i70711, 2009.10.30.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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