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이브
  • 80대 사건
  • 연표
  • 철도노조
  • 오류신고
  • 2000년 직선제공투본 활동

    2000년 1월 14일 대법원의 3중간선제 선거 무효 판결 이후 철민투를 중심으로 한 철도노조 민주진영은 ‘1월 26일 전국기관차지부장회의와 전국차량지부협의회(준), 31개 지부를 규합해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이하 직선제공투본)를 구성하였다.

    직선제공투본은 ’직선제 규약 개정 및 총선거 실시‘ 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조합원 서명운동과 함께 철도노조 집행부의 불법적 대의원선거 저지와 선거 보이콧운동을 벌였다. 이를 위해 2월 17일부터 본조 사무실 점거 농성을 66일간 진행하였고 점거 농성 기간 집행부의 회계장부를 입수해 16억 원의 조합비가 대부분 사적 용도로 유용, 횡령된 것을 폭로했다. 전국철도노조는 깡패들을 동원해 3차례나 폭력 침탈을 자행했다.

    2월 24~25일 치러진 대의원 선거는 직선제공투본의 적극적 거부 운동에 따라 투표율이 40%에 밑돌았고 불법과 탈법행위가 난무한 채 치러져 사실상 무효가 되었다. 3월 7일 전국철도노조가 용역 깡패들의 보호 아래 경북 울진 관광호텔에서 대의원대회를 개최했는데, 직선제공투본은 1박2일에 걸친 저지 투쟁을 진행했다.

    4월 이후 철도청과 전국철도노조의 탄압이 본격화되자 직선제공투본은 용산철탑 고공농성과 명동성당 단식농성, 항의집회 등을 통해 부당징계 저지 투쟁을 전개했다. 7월 이후에는 조직 정비를 통한 2기 공투본을 전개해 민영화 저지와 총파업 조직화 활동을 진행했다. 어용노조의 민영화 합의 이후 조합원 투표를 조직해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직선제공투본은 선거대책기구로 전환해 2001년 직선제 노조 위원장 선거를 준비했다.

    목차
    처음으로
    1월 14일 대법원 판결과 직선제 공투본 결성
    직선제공투본 조합원 서명운동과 철도노조
    철도노조 사무실 점거 투쟁
    철도노조의 불법적 대의원선거 저지 투쟁
    3.7 철도노조 임시대의원대회 저지 투쟁
    결과와 의미

    1. 1월 14일 대법원 판결과 직선제 공투본 결성

    • 대법원 판결과 직선제 공투본 결성

    • 철민추가 ‘직선제 규약 개정 투쟁 집중 방안‘을 제출함

    • 운전지부장회의가 ‘철도정상화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해 민주 철노를 세우자”고 결의함.

    • 서울지역 차량지부, 구로열차지부, 서울기관차승무지부 등 9개 지부와 철민추가 ‘위원장 직선제 및 철노 민주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함.

    • 철도노조가 집행부 호외를 통해 직선제공투본으로 결합하는 흐름을 조합을 분열시키는 행위라 규정하면서 규약개정안을 준비하여 전 조합원 찬반투표를 치르겠다는 입장을 밝힘.

    • 전국기관차승무지부와 전국차량지부협의회(준), 구로열차승무지부 등 31개 지부가 모여 ‘전면적 직선제 쟁취를 위한 공동투쟁본부’(직선제공투본)이 출범함. 철도노조 역사에서 최초로 모든 직종이 참여한 단일한 투쟁본부를 결성함. 직선제공투본은 승무 3명, 차량 2명, 운수 1명으로 구성된 ‘6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조합원 총회 소집을 위한 조합원 서명운동을 시작함. 서명 안건은 △ 지부장 및 위원장 직선제 △ 대의원 직선제 △ 대의원 임기 1년 △ 대의원 배정 100명당 1명 △ 규약 개정 후 즉시 총선거 등 5개 항이었음.

    2. 직선제공투본 조합원 서명운동과 철도노조

    • 철도노조가 기관지를 통해 대의원 선거에 국한해 직선제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함.

    • 철도노조가 중앙위원회를 열어 300명당 1명의 대의원 배정 등 선거관리규정을 개정하고 대의원 선거방침을 확정함.

    • 직선제공투본 소속 조합원 300여 명이 용산 철도노조 본조 앞에서 총회를 개최하고 지도부 구성과 투쟁방침을 확정함.

    • 직선제공투본이 11,036명의 조합원 서명이 담긴 총회소집 요구서를 철도노조에 제출했으나 이를 거부함.

    • 철도노조가 본조 대의원 선거를 공고함.

    3. 철도노조 사무실 점거 투쟁

    • 오전 9시 30분 직선제공투본 조합원 350여 명이 용산 철도노조 앞마당에 모여 선거 강행 중단을 요구하며 무기한 점거 농성에 돌입함. 서울지방본부와 부산지방본부에서도 점거농성에 돌입함. 부산에서는 직선제공투본 조합원 250명이 규탄집회를 열고 지도부 삭발식과 밤샘 농성에 돌입함.

    • 점거농성 5일차, 저녁 경찰 400여 명이 농성장 주변에 배치되고 검문검색이 진행되다 오후 9시 30분 경 ‘철도청년단’이라는 50여 명의 깡패집단이 농성장을 기습해 농성자들을 폭행함. 7명의 간부와 조합원들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비상연락망에 따라 모인 공투본 조합원들이 깡패들을 몰아내고 농성장을 탈환함.

    • 한국노총이 농성장 재침탈을 위해 산하 조직에 530명을 동원하라는 ‘철도노조 지원 인원 동원’ 공문을 내렸으나 사전에 사실이 폭로되어 무산됨.

    • 철도노조가 400여 명의 어용 간부와 조합원들을 동원해 쇠파이프와 가스총으로 무장하고 오후 6시 농성장 2차 침탈을 시도함. 과정에서 직선제공투본 50여 명이 쫓겨나고 7명의 조합원이 중상을 입음. 농성장 침탈 소식을 들은 조합원 200여 명이 밤새 도로변을 점거해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을 전개하고 다음 날인 31일 오전 10시 진입 투쟁을 진행, 농성장을 재탈환함. 이 과정에서 다수의 부상자와 17명의 연행자가 발생함. 한편 농성장 주변에 1천여 명의 경찰 병력이 배치되었으나 어용 세력들의 폭력을 방관함.

    • 서울역에서 직선제공투본 조합원과 연대단체 회원 400여 명이 모여 결의대회를 열고 징계 대응과 현장 투쟁을 위해 66일간 진행했던 본조 점거 농성을 마무리함.

    4. 철도노조의 불법적 대의원선거 저지 투쟁

    • 직선제공투본 노동부를 항의 방문해 철도노조의 불법 선거 행위 즉각 시정조치를 촉구함.

    • 24~25일 철도노조의 대의원 선거가 진행되어 재적 대의원 85명 중 당선자 54명을 선출했다고 발표했으나 투표율과 찬성률을 공개하지 않음. 공투본 자체 집계결과 조합원 전체 투표율은 40%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됨. 선거도 찬성란만 있는 불법 투표용지 사용, 공개투표, 이동투표, 철도청 개입, 개표절차 무시 등 각종 불법, 탈법행위가 난무함. 직선제공투본은 선거기간 투표 거부 운동을 전개했고 서울지역의 경우 투표율이 20%를 상회함.

    • 직선제공투본 조합원 250여 명이 과천 노동부 청사를 항의 방문해 ‘총회 소집권자 지명 즉각 수용과 불법 투표용지 사용에 대한 시정 조치’를 위한 집단민원 투쟁을 전개함.

    5. 3.7 철도노조 임시대의원대회 저지 투쟁

    - 불법적 대의원선거를 강행한 철도노조 집행부는 3월 7일 기차도 다니지 않는 경북 울진 백암온천 석류파크호텔에서 대의원대회를 강행함.

    - 집행부는 대회 시간도 근무교대 시간인 오전 9시로 공고하여 조합원들의 참여를 원천봉쇄하려 함. 또한 깡패와 한국노총 소속 택시, 항운 조합원 200여 명을 동원해 대의원대회 장소를 봉쇄했고 한국노총 간부들이 이를 진두지휘함.

    - 대의원대회 저지를 위해 3월 6일 직선제공투본 소속 조합원 40여 명이 오후 7시 호텔에 도착하고 100여 명의 깡패 세력들과 대치함. 이에 서울, 부산, 대전, 영주, 광주 등 공투본 소속 조합원 140여 명이 7일 새벽에 도착해 새벽 5시 30분부터 대의원대회 장소 진격투쟁을 전개함. 이 과정에서 깡패들은 소화기, 재떨이 등을 던지고 뜨거운 물까지 들이 부어대는 등 공투본 조합원들을 폭력으로 저지하였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함.

    - 7일 새벽 4시 30분부터 시작한 격렬한 싸움이 아침까지 진행되었으며 결국 공투본 조합원들이 호텔 지하에서부터 7층까지 접수하면서 대의원대회를 저지하려 했으나 전국철도노조 집행부는 7층 모처에서 졸속으로 대의원대회를 치름.

    - 한편 한국노총 이광남 직무대행이 호텔에서 나오다가 공투본 조합원들에게 붙잡혀 경위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이에 강력한 항의를 받음.

    - 전국철도노조는 ‘김기영 현 위원장의 임기 보장(2001년 5월까지), 전면적 직선제로 규약 개정, 대의원 배정 200명당 1명, 직선제공투본 조합원 44명 제명 등’의 대의원대회 결과를 산하조직에 통보함.

    - 3월 8일 직선제공투본이 서울역에서 집회를 열고 3월 7일 벌어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대의원대회 저지 투쟁 경과를 보고하고 향후 투쟁방침으로 대의원대회 무효 선언과 소송 및 즉각 총선거, 조합비 횡령에 대한 고소·고발, 본조합 점거농성 무기한 연장을 결정함.

    6. 결과와 의미

    2000년 직선제공투본은 헌신적 활동과 투쟁을 통해 철도노조 민주화를 앞당겼다. ‘3중간선제 무효’ 대법 판결 직후 즉각적인 직선제공투본 조직 건설과 함께 철도노조 민주화운동 역사상 최초로 모든 지역, 직종과 제 민주세력을 하나로 집결시킨 직선제공투본은 별도의 조직체계와 독자 활동을 통해 어용노조에 대항하는 민주노조의 역할을 했다.

    조합원 서명운동, 철도노조의 불법적 대의원선거 저지 투쟁, 66일간의 본조 점거 농성, 3차례의 농성장 침탈 저지 투쟁, 3.7 임시대의원대회 저지 투쟁, 연일 전국적인 결의대회 개최, 어용노조의 회계부정 폭로와 고소고발, 기관지 ‘바꿔야산다’를 정기적으로 발행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조합원들에게 직접 배포하는 활동을 통해 철도 현장에서 어용세력 퇴출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

    대법 판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1988년 파업 이후 철도청과 철도노조의 지속적인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민주노조 활동을 이어온 활동가들의 분투와 민영화 공세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의 기대와 절박함이 2000년 직선제 공투본 투쟁의 원동력이 되었다.

    직선제공투본은 조합원 중심의 활동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투쟁을 회피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현장의 어용 세력과 기회주의 세력의 실체를 폭로하고 이들과 전면적인 현장 투쟁을 벌여나가면서 ‘민주노조’를 실천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마지막으로 직선제공투본 투쟁 역시 민주노조를 염원하는 활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이 바탕이 되었다. ‘위원장을 조합원의 손으로’ 선출하자는 지극히 상식적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와 정직, 비연고지 전출, 조합원 제명 등 대규모 징계와 탄압(중징계 13명, 비연고지 전출 40명, 소내 부당전출 9명, 구속자 3명)이 자행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맞서 싸웠고 2001년 위원장 직선제 선거를 통한 민주노조 탄생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된다.

    ※ 참고자료

    - 김병구, 「철도 민주노조 건설의 역사 - 저항과 연대·헌신의 역사 : 94년 6·23 파업 이후부터 2001년 선거투쟁까지」,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이영익, 「새로운 역사 공투본 투쟁」,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직선제공투본 투쟁 자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모음 번호 HNf2131·HNf2132·HNf2133·HNi69828, 2000.
    - 『직선제공투본 선전물 모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i70711, 2009.10.30.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수정할 내용 신고하기

    아카이브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 중 오류가 있는 경우, 노조에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mail을 적어주시면, 반영후 답변드리겠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