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노동자들의 현장운동조직은 어용 철도노조의 공식 체계와 별도로 조직,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직종별 조직(1989년 전기협), 철도노조 선거 대응을 위한 대책기구(1992년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공동선거대책협의회), 민주파 지부들의 협의체(1992년 서울민주지부협의회) 등 다양한 조직 형태로 어용 철도노조를 대체하는 현장 활동과 투쟁이 진행되었다.
1994년 하반기부터 해고자, 부당전출자, 각 직종·지부별 민주파 활동가들이 모여 현장활동가조직 건설과 대응에 나섰다. 철도해고노동자회에 이어 1995년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철도노민추)가 잇따라 출범하였고 당면한 철도노조 선거와 노조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다. 1996년 ‘조합민주주의의 실현과 불법적인 조합비 인상 철회를 위한 전국 범대위’ 활동을 주도했으나 철도청과 어용 철도노조의 징계 탄압으로 좌절되자 민주파 지부, 활동가, 해고자들의 투쟁은 위축되었고 1996~1997년 현장활동가조직 운동도 내부의 이견과 분화 등이 발생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악조건에서도 철도노민추의 활동이 지속되었고 운수직종의 ‘운수마을21’과 철도발전연구회의 창립과 활동이 이 시기에 진행되었다. 또한 1998년 노조 선거를 거치며 민주파 지부들의 연대와 공동활동이 진행되었다. 수도권 동력차 검수부지부장들의 ‘검수대표자회의’, ‘서울지역 차량지부협의회’에 이어 ‘전국차량지부협의회’가 구성되어 노조 민주화와 현장투쟁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1999년 철도노민추, 운수마을21, 철도발전연구회는 1998년 여름부터 1년간 통합을 모색했다. 이를 위한 기간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 평가와 공청회, 각 조직 회원들의 공동교육, 산행 등 친목사업을 진행하였다. 통합조직은 당시 ‘합리적 민영화 수용, 한국노총 민주화’ 등 내부 이견 토론 끝에 ‘민영화 저지, 민주노총 가입’ 노선과 방향을 정했다.
이에 따라 철민추는 노조가 아닌 조직이었지만 당시 민주노총 공공연맹에 가입하였고 민영화 저지를 위한 정책개발과 교육사업에 집중했다. 당시 지부 현장 간부, 조합원, 회원을 대상으로 50여 회 이상 교육사업을 진행했다. 철민투는 2000년 직선제 공투본 투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철도노조 민주집행부 선거운동과 2002년 민영화 저지 파업 투쟁에 헌신하였다. 부당전출과 징계, 해고, 구속 등 탄압과 생계난을 아랑곳하지 않고 헌신한 수많은 활동가의 노력과 희생으로 민주철도노조의 건설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 참고자료
- 김병구, 「철도 민주노조 건설의 역사 -저항과 연대·헌신의 역사 : 94년 6·23 파업 이후부터 2001년 선거투쟁까지」,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이철의, 「전기협의 설립과 활동」,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철민추 자료 모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 HNi66381, 1998.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