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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민주파 현장조직들의 활동과 통합

    철도 현장 내 철도노민추, 철도발전연구회, 운수마을로 분리되어 성장하던 철도 활동가조직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철도 현장에 불어닥친 철도 민영화 추진과 전국철도노조의 무대응에 위기의식을 느낀 현장 간부와 활동가들의 통합 요구에 직면했다. 마침내 1998년 여름부터 1년여간의 통합 논의 끝에 1999년 5월 23일 대전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철도민주노조추진위원회(철민추)’로 조직을 통합했다. 철민추는 민주노총 공공연맹에 가입해 민주노조 지향성을 명확히 밝혔으며 철도 민영화 저지를 전면에 내세우며 5개 지역위원회 활동을 기본으로 매월 기관지 발행, 교육사업, 지부 현장투쟁을 지원했고 2000년 공투본 투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2001년 민주철도노조 건설 이후 해산했다.

    목차
    처음으로
    철도 현장 조직
    철도민주노조추진위원회로 통합 경과
    철도민주노조추진위원회 주요 활동
    결과와 의미

    1. 철도 현장 조직

    운수마을21

    ‘운수분야 활성화를 위한 모임’을 진행하다 기관지 ‘운수마을21’ 발간 이후 이를 조직 명칭으로 삼아, 운수직종의 공개 활동가조직으로서 활동했다. ‘운수마을21’ 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맛기행과 역사기행을 진행하며 대중적 토대 구축에 힘썼다. 꾸준한 소식지 발행과 활발한 교육사업을 통해 많은 현장 활동가를 발굴하고 배출했다. 운수마을21은 서울지역에 한정된 활동을 했지만, 기관차 승무나 검수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용노조의 뿌리가 깊었던 운수 분야에서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투쟁을 이끌었다.

    철도발전연구회

    1997년 철도노조 민주화에 대한 방향과 활동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철도노민추에서 분리되어 철도발전연구회가 만들어졌다. 같은 해 9월 27일 ‘철도사랑’ 기관지 창간준비1호를 발행했다. 철도청 민영화와 경영합리화에 대한 정책 대응, 현장 조합원 여론 조사 활동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자 했다. 

    철도노민추

    1995년 3월 25일 대전 한남대에서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철도노민추)를 결성한 이후 1995년 철도노조 선거에 대응해 서울지방본부 위원장 후보와 전국의 민주파 지부장 후보 지원 선거운동을 진행하였다. 1996년에는 ‘새벽철길’ 소식지 격주 발행과 철도노조의 일방적 조합비 인상에 맞서 ‘조합비 인상 반대 범대책위원회’ 투쟁을 조직했다. 이후 조직 분화, 생계 어려움 등 악조건 속에서도 조직활동을 지속하였다. 

    2. 철도민주노조추진위원회로 통합 경과

    • 3조직 통합 실무회의를 열어 ‘철도 민주노조운동 통일단결 추진위원회(통추회의)’로 명칭 결정, 각 조직별 실무위원 선정함.

    • 소식지 ‘통일단결’ 1호 발행함.

    • 24일~25일. 3조직 회원 수련회와 토론회 진행

    • 1월 14~15일. 관악산 신년 산행, 3조직 회원 및 현장간부 연인원 60명 참가

    • 1월 19일~2월 13일 – 통추회의 회원 노동교실(총 6회)

    • 8차 통추회의에서 각 조직 통합조직규약(안) 제출 및 조직 현황 점검

    • 통합조직 규약(안) 협의

    • 통합 일정 확정

    • 16차 통추회의에서 각 조직 경과 보고 및 통합방침 최종 확정, 통합총회 준비를 위한 실무진 인선

    • 서울지역 현장토론회 개최

    • 대전 기독교연합봉사회관에서 철도민주노조추진위원회 창립총회 개최. 통합 규약안을 확정하고 5개 지방본부 단위 지역위원회를 구성함.

    3. 철도민주노조추진위원회 주요 활동

    6월 4일 – 1차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해 철민추 조직정비계획, 사업계획과 예산안 초안 심의함.

    7월 4일 – 1차 중앙위원회를 개최하고 중앙집행위원 인준, 1999년 사업계획과 각 부서별 사업계획을 확정함.

    정책사업 - ‘한국철도 민영화 정책 비판과 대안 : 사회적 철도 건설을 위한 노동조합의 대안’ 연구사업, 조합원 설문조사 사업 진행함.

    선전사업 – 7월 12일 철민추 속보 1호를 발간하고 ‘민주철노’ 기관지 7월 30일 1호 발행 이후 월 1회 발행 및 배포함.

    9월 국회 국정감사 대응 – 철도 경영개선과 민영화 정책 문제, 서울동차 보수품 유용과 축상발열 문제, 기관사 1인승무 문제, 두정역 열차탈선사고 원인 규명 등 대응

    4. 결과와 의미

    철도노동자들의 현장운동조직은 어용 철도노조의 공식 체계와 별도로 조직,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직종별 조직(1989년 전기협), 철도노조 선거 대응을 위한 대책기구(1992년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공동선거대책협의회), 민주파 지부들의 협의체(1992년 서울민주지부협의회) 등 다양한 조직 형태로 어용 철도노조를 대체하는 현장 활동과 투쟁이 진행되었다.

    1994년 하반기부터 해고자, 부당전출자, 각 직종·지부별 민주파 활동가들이 모여 현장활동가조직 건설과 대응에 나섰다. 철도해고노동자회에 이어 1995년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철도노민추)가 잇따라 출범하였고 당면한 철도노조 선거와 노조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다. 1996년 ‘조합민주주의의 실현과 불법적인 조합비 인상 철회를 위한 전국 범대위’ 활동을 주도했으나 철도청과 어용 철도노조의 징계 탄압으로 좌절되자 민주파 지부, 활동가, 해고자들의 투쟁은 위축되었고 1996~1997년 현장활동가조직 운동도 내부의 이견과 분화 등이 발생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악조건에서도 철도노민추의 활동이 지속되었고 운수직종의 ‘운수마을21’과 철도발전연구회의 창립과 활동이 이 시기에 진행되었다. 또한 1998년 노조 선거를 거치며 민주파 지부들의 연대와 공동활동이 진행되었다. 수도권 동력차 검수부지부장들의 ‘검수대표자회의’, ‘서울지역 차량지부협의회’에 이어 ‘전국차량지부협의회’가 구성되어 노조 민주화와 현장투쟁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1999년 철도노민추, 운수마을21, 철도발전연구회는 1998년 여름부터 1년간 통합을 모색했다. 이를 위한 기간 철도노조 민주화 투쟁 평가와 공청회, 각 조직 회원들의 공동교육, 산행 등 친목사업을 진행하였다. 통합조직은 당시 ‘합리적 민영화 수용, 한국노총 민주화’ 등 내부 이견 토론 끝에 ‘민영화 저지, 민주노총 가입’ 노선과 방향을 정했다.

    이에 따라 철민추는 노조가 아닌 조직이었지만 당시 민주노총 공공연맹에 가입하였고 민영화 저지를 위한 정책개발과 교육사업에 집중했다. 당시 지부 현장 간부, 조합원, 회원을 대상으로 50여 회 이상 교육사업을 진행했다. 철민투는 2000년 직선제 공투본 투쟁의 시작부터 끝까지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이후 철도노조 민주집행부 선거운동과 2002년 민영화 저지 파업 투쟁에 헌신하였다. 부당전출과 징계, 해고, 구속 등 탄압과 생계난을 아랑곳하지 않고 헌신한 수많은 활동가의 노력과 희생으로 민주철도노조의 건설과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 참고자료

    - 김병구, 「철도 민주노조 건설의 역사 -저항과 연대·헌신의 역사 : 94년 6·23 파업 이후부터 2001년 선거투쟁까지」,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이철의, 「전기협의 설립과 활동」,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철민추 자료 모음』,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 HNi66381, 1998.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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