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부터는 전기협 중심의 근로조건 개선 투쟁을 중심축으로 하였던 활동이 직선제로의 규약개정을 통한 어용노조 민주화 투쟁으로 전환하게 된다.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어용노조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1988년, 1994년 파업을 통한 교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노조 민주화는 일부 직종만의 과제가 아닌 전 직종의 과제로 인식하고 철도 현장내 민주파 활동가들이 함께 조직을 만들고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철도노민추는 1988년과 1994년 파업 해고자를 비롯해 부당징계 전출자, 현장 활동가들이 함께 만든 조직이었다. 철도노민추는 1995년 철도노조 총선거에서 민주진영 선거 투쟁의 구심 역할을 했고, 서울지방본부위원장 후보로 나선 민주진영의 유광배 서울전동차 지부장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어용 철도노조가 직선제 선거를 치렀던 서울객화차지부를 사고지부로 일방 판정하고 연합전술에 참여했던 기회주의 세력의 배신으로 인해 재선거가 치러졌다. 민주세력은 서울지방본부와 철도노조에서 일주일간의 항의농성투쟁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철도노조가 서울지방본부 대의원대회에 경찰 지원을 요청해 경찰 호위 속에서 선거를 치렀고, 결국 당선에 실패한다. 그럼에도 선거 대응을 통해 서울지역 민주파 지부장 당선 등 민주진영의 세력화를 이루어냈다.
서울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철도노민추는 민주진영 후보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운수 분야에서는 지부 간부들과 활동가들이 직종 모임을 결성하고 조직적인 활동에 나섰다. 특히 서울객화차사무소와 청량리객화차사무소가 민주지부로 전환되면서 검수 직종의 세력화가 눈에 띄게 확대되었다.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이 기관차에서 차량과 운수 등 다양한 직종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관차지부들에서도 대부분 민주파 후보가 당선되어 전국기관차지부장회의 결성을 이뤄냈다. 이들은 철도청의 탄압에도 해고자 후원사업을 공개적으로 펼쳤으며 6·23파업투쟁 기념식을 여는 등 민주노조 활동을 옹호하고 실천했다.
철도노민추는 1996년 1월 18일부터 격주 발행 소식지인 「새벽철길」을 현장에 배포했다. 「새벽철길」은 1996년 5월 23일 수안보온천 상록수 관광호텔에서 열린 철도노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조합비가 일방적으로 0.5% 인상된 사실을 폭로했고, 이는 ‘조합비 인상 반대 범대책위원회’ 투쟁을 촉발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4년 전기협 파업의 패배와 철도청과 철도노조의 이중 탄압으로 얼어붙은 철도현장을 해고자, 부당전출자, 현장 민주파 활동가들이 모여 조직을 만들고 1995년 노조 총선거에 대응하면서 1994년 투쟁의 정당성을 알려내고 ‘어용노조 민주화’를 전면에 내건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노조민주화 세력과 조직들은 1990년대 후반 탄압과 조직 분화로 부침을 겪었지만 2000년대 민주철도 건설의 밑거름이 되었다.
※ 참고자료
- 김병구, 「철도 민주노조 건설의 역사 -저항과 연대·헌신의 역사 : 94년 6·23 파업 이후부터 2001년 선거투쟁까지」,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철도노조민주화지원연대, 『창립 홍보 자료집』, 1996.1.
- 이철의, 「전기협의 설립과 활동」,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민추 자료 모음 : 1996년~1998년』,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f1947.
- 전국철도노동조합, 『철도노민추 자료 모음 : 1999년~2000년』, 노동자역사 한내 문서번호 HNf2157.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