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 원직복직 및 8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전기협의 투쟁은 1994년 초부터 시작됐다. 1994년 들어 공무원의 임금과 법정수당 단가가 인상됐으나 변형근로시간제로 일하는 철도원, 특히 승무원의 경우 임금인상 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철도청이 복무규정으로 채택하고 있었던 변형근로시간제는 근로기준법에 보장하고 있는 노동시간 기준(8시간 노동제), 임금계산 기준(법정수당 계산 기준)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었다. 더욱이 1996년 1월 1일 공사화를 앞두고 철도청이 ‘경영합리화’란 명목으로 진행하고 있는 인원 감축, 노동강도 강화 움직임과 맞물려 변형근로시간제는 기형적인 개악을 거쳐 더욱 열악한 노동조건 속으로 내몰고 있었다.
이에 1988년 철도파업 이후 변형근로시간제의 철폐를 요구해왔던 전기협은 1994년 1~2월 각종 회의를 거쳐 이 문제를 대중 투쟁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전기협은 대표자회의를 열어 투쟁 결의를 확인하고 △ 해고자 원직복직 △ 8시간 노동제 쟁취 △ 승진차별과 호봉체계 개선 등으로 요구안을 잠정 결정했다. 이후 3월부터 전국 20개 지부를 순회하며 설명회와 투쟁방침 토론회를 열었다.
4월 들어 요구안을 확정하고 전국 5개 지구별 투쟁결의대회를 개최했으며 5월 3일 1천여 명이 모인 중앙 투쟁 결의대회를 통해 파업을 공식 선언했다. 조직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형태로 개편한 전기협은 『승리의 길』이라는 투쟁속보를 냈다. 5월 9일 부산을 시작으로 지구조직을 비대위로 전환, 각 단위 투쟁체계를 정비했다. 전기협은 5월 24일 ‘해고 동지 원직복직과 8시간노동제 실시를 위한 철도원 투쟁 전진대회’를 서부역 광장에서 1,500명 이상의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지도부 구속 결단식, 비상시 행동지침, 대국민 메시지 등을 발표해 본격적인 투쟁국면에 접어들었음을 확인했다.
전기협은 5월 3일부터 진행하던 리본달기, 현수막 부착, 쟁의기금 15,000원 모금, 쟁의복 구입 등의 준법투쟁을 강화하면서 5월 24일, 본격적으로 파업 준비에 돌입해 대외 연대사업, 대국민 홍보, 차량스티커 등으로 투쟁의 의미와 정당성을 알려 나갔다. 이어 5월 26일 전국철도노조 대의원대회장 점거, 철도청과 전국철도노조에 특별단체교섭 요청, 철도청의 ‘철도 현업직원 개선 대책’에 대한 입장 발표 등을 적극적으로 이어갔다.
한편, 3월 16일 궤도교통노동자의 연대조직으로 산별노조를 지향하면서 출범한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전지협)’는 전기협의 투쟁을 적극 지원·협조하면서 연대 의지를 다졌고, 6월 2일 종묘공원, 6월 4일 부천역에서 열린 전지협 공동투쟁결의대회를 통해 공동투쟁을 결의했다. 전기협은 전지협에 참관단체 자격으로 참여했다.
철도청은 전기협 회원들을 대상으로 정년연장을 신청한 회원들을 협박해 전기협 탈퇴를 강요하거나 각종 선전물을 폭력적으로 제거했다. 전기협 회원들에 대한 무차별 소환조사가 1994년 6월 초 이미 100여 명을 넘었다. 게다가 소속장들을 불러 탄압을 강요하고 명단을 내지 않은 소장에게 압력을 가했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전기협 탈퇴를 협박하는 일도 있었다.
한편, 전기협이 전면적인 투쟁 의지를 밝히자 정부도 전기협의 투쟁을 불법으로 단정하고 지도부 검거에 나설 준비를 했다.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 유사시 즉각 대처하기 위해 전기협은 6월 13일부터 조합원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전기협은 요구안으로 △ 변형근로시간제 철폐(시간외수당을 월 192시간 기준에서 일 8시간 기준으로 지급, 유급휴일 연 67일 이상 보장) △ 해직노동자 원직 복직 △ 승진차별 철폐 △ 호봉체계 개선 등을 요구안으로 내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