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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년 공선협과 서민협 활동,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확산과 현장투쟁

    1988년 파업 이후 기관사들을 중심으로 1989년 전기협을 결성해 노조 민주화를 위한 현장 활동이 본격화되었고 기관차지부 외 차량, 운수 등 여러 직종에서도 민주노조 건설 투쟁이 시작되었다.

    민주진영 활동가들은 어용노조에 대항하고 노조 민주화를 위해 1992년 전국철도노조 총선거에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공동선거대책협의회(공선협)”을 구성하여 선거에 참여했다. 철도청의 부당전출 협박, 어용노조의 조직적 방해를 뚫고 수도권 10개 지부에서 공선협 소속 민주후보가 당선되었다.

    선거 이후에는 선거 공동대응을 통해 당선된 지부들과 활동가들이 ‘서울민주지부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서민협은 기관지 ‘그날이 오면’을 발행하고 공동으로 간부 교육사업을 펼치는 등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펼쳤다. 1993년에는 서민협이 주축이 되어 서울지방본부 위원장 불신임투쟁을 진행하고 보궐선거를 통해 유광배 민주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민주집행부는 3개월의 보궐 잔여 임기 후 치러진 선거에서 어용 대의원들의 조직적 결집과 표몰이를 당해내지 못해 패배했다.

    한편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철도 민주노조운동은 전국 곳곳에서 활발한 현장 투쟁으로 세력을 키우고 기반을 다져나갔다. 구속자 가족후원회 해체 압력에 맞선 현장 투쟁, 망우역 대기시간 단축 투쟁, 기관사와 검수원 인력증원 요구 투쟁, 정민효 기관사 장례투쟁, 구로열차지부 준법투쟁 등 철도청의 폭압적 노무관리와 어용노조의 탄압 속에서도 조합원 중심의 현장 투쟁을 진행하였다.

    목차
    처음으로
    경과
    결과와 의미

    1. 경과

    •  ‘공선협 구성과 선거운동’ - 철도노조 총선거를 맞아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공동선거대책협의회(공선협)’를 구성하여 각 지부의 민주후보를 지원한 결과, 수도권에서는 청량리기관차를 포함한 4개 기관차지부, 서울열차 등 3개 열차지부, 서울객화차, 수원역연합, 청량리보선 등 총 10개 지부에서 민주 후보가 당선됨.

    • ‘서울동차지부 부당전출 저지투쟁’ – 공선협 의장이었던 유광배 서울전동차지부장이 민주후보로 서울지방본부장 후보에 출마했으나 서울동차지부의 이탈로 민주파 후보가 불과 4표 차이로 낙선하자, 전기협 소속 조합원들이 지부장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사퇴를 요구함. 이에 철도청은 다이아 개정을 핑계로, 민주파로 분류된 서동지부 조합원 8명을 수원기관차로 전출시키며 조직적 탄압을 진행함. 부당전출 당사자들은 즉각 단식투쟁에 돌입하여 부당전출에 항의함. 이어 수도권 5개 지부 공대위(서울 전동차. 청량리기관차. 서울기관차. 수원기관차 등 4개 지부와 서울 동차사무소 비대위)가 구성되어 부당전출 원상회복을 위한 공동투쟁을 전개함. 지부장 등 공대위 대표들의 동조단식, 조합원들의 규탄 집회, 깃달기, 사복투쟁, 전동차 소자보 부착투쟁에 이어 500여 명이 참가한 연대집회를 개최하는 등 투쟁으로 “전출 조합원들 3개월 내 원직복직” 등을 쟁취하여 투쟁을 마무리함.

    • ‘서민협’의 구성과 활동 – 철도노조 선거에서 당선된 10개 현장 지부장들을 중심으로 6월 20일 ‘서울민주지부협의회((서민협, 의장 유광배 서울전동차지부장)를 결성해 ‘선거 대응을 통한 지방본부 민주화, 철도노조 본부조합 대응’을 위해 기관지 발행, 간부 공동교육사업, 등반대회 등 간부, 조합원 사업을 진행함.

    • ‘서민협’의 서울지방본부 위원장 선거 대응 – 서울지방본부장 불신임 운동을 주도해 사퇴시키고 보궐선거에 나서 서민협 의장이 당선됨.

    2. 결과와 의미

    ▪ 현장민주파운동 조직화와 공동 실천

    1992년 공선협의 선거 대응을 통한 수도권 민주파 후보의 당선과 이후 서민협의 활동은 기관사 직종 이외에도 차량, 운수직종의 민주노조 세력이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한 공동대응과 실천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여전히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노조내 어용 세력, 간선제 선거 제약, 수도권에 한정된 민주파 세력의 규모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활동의 제약이 있었지만 1992년 서울동차지부 부당전출 투쟁에서 직종간의 경계를 넘은 연대투쟁을 조직해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 현장 투쟁으로 성장한 철도 민주노조 운동

    1989년부터 94년까지 철도 민주노조운동은 전국 곳곳에서 조합원들이 중심이 된 현장투쟁을 바탕으로 그 기반을 강화해갔다. 철도청의 폭압적인 노무관리와 본부, 지방본부를 비롯한 대다수의 지부가 어용 집행부인 상태에서 현장 조합원 중심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있었기에 선거와 부당노동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1988년과 1989년 구속자 가족후원회 해체 압력이 있었을 때 전동차 승무원들은 깃달기와 농성으로 맞서 후원회 활동의 보장을 약속받았다. 이때 그들은 지부장이 외면하는 가운데에서도 후원회를 중심으로 현장투쟁을 벌여냈다.

    1989년 청량리기관차지부의 ‘망우역 대기시간 단축 투쟁’, 서울전동차지부의 ‘기관사 및 검수인력 증원 투쟁’ 등을 시작으로 1990년에는 ‘부산기관차 정민효 동지 장례투쟁’, ‘제천기관차 구속기관사 석방 투쟁’ 등 현장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1990년 ‘구로열차지부의 구속 차장 석방 투쟁’은 준법운행으로 수도권 전철을 마비시키는 위력을 보여 주었으며 서울전동차지부에서도 ‘구속기관사 석방 투쟁’이 벌어졌다. 이외에도 부산기관차지부의 ‘제동력 확보 투쟁’, 서울동차지부의 ‘검수인력 확보 투쟁’, 서울기관차지부의 ‘노조탄압 저지 투쟁’ 등 활발한 현장 투쟁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비록 소수였지만 민주파 대의원들은 철도노조 대의원대회에서 전국철도노조의 비민주적인 의사 진행과 어용 행태를 비판, 규탄해 대회 때마다 파행 운영이 불가피했고 전국철도노조의 어용 행태를 현장에 다시 알리는 활동을 이어갔다.

    ※ 참고자료

    - 이철의, 「전기협의 설립과 활동」,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서선원, 「철도노동운동사」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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