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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9년 경인선·경성철도 개통, 일제 강점기 철도 형성

    1899년 9월 18일 인천~노량진 간 철도가 개통되어 노면전차를 제외한 한반도 최초의 철도 노선이 첫 운행을 하게 된다

    목차
    처음으로
    철도의 도입
    철도 부설과 열강의 침탈
    1899년 경인선과 서울전차 개통
    일제 강점기의 운영체제
    일제 강점기의 철도 확장
    6월 28일 ‘철도의 날’

    1. 철도의 도입

    1877년 일본 수신사로 다녀온 김기수의 저서에 ‘화륜거’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한반도에 처음으로 소개된 철도였다. 이후 철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개혁 세력과 제국주의 열강의 철도 건설 요구를 바탕으로 1894년 조선 정부는 철도의 부설, 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철도국을 설치했다. 1896년에는 국제표준의 철도를 건설할 것을 규정한 철도 규칙을 제정했다. 이후 부설권을 차지한 제국주의 열강들이 주도해 1899년 경인선 구간과 경성철도의 개통이 이루어졌고 1905년 경부선 개통 이후 식민지 시대에는 순차적으로 전국 각지에 노선이 건설, 개통되어 국유화된 형태로 운영되었다.

    2. 철도 부설과 열강의 침탈

    조선은 1876년 개항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정치적·경제적 침략을 당하면서 각종 이권을 빼앗겼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조선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구실로 제국주의 열강들이 경쟁적으로 조선의 이권을 침탈했다. 이권은 해운과 전신·어업·해관·철도·광산 등이었다. 특히 철도는 대규모의 인력과 물자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운송 수단이어서 상품경제의 발전과 시장의 확대를 가져오는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가진 산업이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시 서울~인천, 서울~부산 간의 철도 부설권을 차지하려고 했다.

    3. 1899년 경인선과 서울전차 개통

    1) 경인선 개통

    일본은 1892년 이미 서울~부산 간의 철도 건설을 위해 측량을 마친 상태였으며 청일전쟁의 물자 수송을 위해 1894년 서울-인천, 서울-부산 간 철도 건설을 계획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청나라, 러시아 등의 반대와 아관파천으로 인해 부설권 획득에 실패했다. 한편 미국 공사 알렌의 주선으로 1896년 경인철도 부설권을 미국이 차지해 1897년 3월 29일 인천 우각리에서 기공식을 거행한다. 이후 이 노선의 부설권은 1898년 자금 부족을 이유로 일본 정부가 자국 재벌기업들을 동원해 만든 ‘경인철도인수조합’에 팔렸다. 1899년 9월 18일 인천~노량진 간 철도가 개통되어 노면전차를 제외한 한반도 최초의 철도 노선이 첫 운행을 하게 된다.

    2) 서울전차 개통

    서울전차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에서 운행하던 노면전차로, 한국 최초의 철도 노선이자 도시철도 노선이다. 서울전차는 대한제국이 전기를 도입하기 위한 사업의 부대사업으로 개통되었다. 한미 합자회사인 한성전기회사의 주도 아래 1898년 9월 15일 개설 예식과 함께 공사를 시작해 1899년 5월 20일에 개통식을 가지고,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최초 개통 구간은 단선 약 8km의 경교(돈의문)~종로~흥인지문~보제원~청량리(홍릉) 구간이었다.

    4. 일제 강점기의 운영체제

    1899년 경인선 철도가 개통된 이후, 일제 식민지 하에서 국내 철도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철도업무도 대한제국(1897.10.12.~1910.8.29.) 농상공부에서 궁내부 철도원으로 이관되었고, 이후에는 궁내부 서북철도국(1900년 4월 1일) 및 통감부 철도관리국(1906년 7월 1일) 등을 설치하며 철도 건설 및 철도 운영 등의 업무를 처리했다. 1909년 3월 16일에는 통감부의 철도관리국 제도가 폐지되고, 대신 통감부 철도청이 설치되었다. 전문적으로 철도업무를 관리하는 부서나 국이 설치되었다가 폐지되곤 하였다.

    일제 식민 통치가 시작되기 직전인 1909년 12월 16일에는 한국철도의 설치 및 운영이 일본으로 이관되었다. 통감부 철도청이 폐지되고, 일본 철도원에 한국철도 관리국이 설치되었다. 당시 일본 철도원 한국철도 관리국에는 서무, 영업, 운전, 공무, 건설, 공작, 계리 등의 7과를 운영하고, 용산에 운수사무소 및 보선사무소를 두었다. 한국철도 관리국은 경부선, 경인선, 마산선을 관장했고, 신의주 압록강 교량 공사를 담당했다. 그러나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후 10월 1일에 철도원 한국철도관리국이 폐지되고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설치되었으며, 1943년 2월 1일에는 세관·해사·항공업무 등을 동시에 담당할 수 있는 교통국으로 개편되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되기 이전까지 한국철도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국가 부처 기능을 담당하였다.

    5. 일제 강점기의 철도 확장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주도적으로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을 순차적으로 개통시켰고 1904년 러일전쟁 승리 이후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획득하게 되자 모든 철도를 국유화했다. 또한 경부·경인선을 통해 남북 종단 노선을 확보하고 식민지 지배를 위해 남서와 동북을 연결하는 경원선, 호남선, 함경선 등을 차례로 부설한다. 1910년 식민지 지배체제를 확립한 이후에도 원활한 수탈을 위해 대대적인 교통망 확충에 나섰고 이런 계획은 1927년 조선철도 12년 계획을 통해 실행된다. 이에 따라 도문선, 혜산선, 만포선, 경전선(진주~전주, 원촌~담양), 동해선(원산~포항, 울산~부산) 일부 구간 또는 전 구간이 완공되고 사설 철도인 경남선(마산~진주), 전남선(송정리~담양), 경동선(대구~학산), 전북철도(익산~전주), 도문철도(회령~도광진) 등이 국유화된다. 이로써 일제 강점기 광산, 곡창, 공업지대를 연결하는 철도망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초기 군사철도에서 자원의 수탈을 목표로 하는 산업철도의 모습을 점차적으로 띄게 된다. 또한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함경선의 복선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말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물자의 부족을 겪게되면서 조선의 철도 건설 사업이나 개량 사업은 중단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다. 심지어 경북선, 안성선의 레일을 걷어가기도 하고, 차량의 부품을 철거하여 군수물자를 생산하기도 했다.

    6. 6월 28일 ‘철도의 날’

    2017년까지 ‘철도의 날’은 9월 18일이었다. 1899년 노량진~제물포 간 경인선의 개통일을 기념일로 삼았다. 그러나 일제가 진행한 경인선 개통일을 기념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잇따른 비판에 따라 정부는 2018년 5월 8일 국무회의를 통해 ‘민족의 자주성 회복과 일제 잔재 청산’의 목적에 따라 철도의 날을 기존의 9월 18일에서 1894년 철도국이 설립된 6월 28일(당시 음력일이었으나 양력일로 바꿔 정함)로 변경하고 같은 해 6월 2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국토부 주최의 행사를 진행했다. 한편 조선 말 갑오경장 정부 때인 1894년 6월 28일, 오늘날의 국토부 전신에 해당하는 공무아문(工務衙門)을 설치하고 그 산하에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기관인 철도국(鐵道局)을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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