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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구로열차지부 준법운행 투쟁

    1990년 11월 17일 지하 청량리역에서 전철 승객의 가방을 끼운 채 의정부발 인천행 전동열차가 출발해 승객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량리역은 곡선 승강장으로 차장실에서는 사고 발생 출입문이 보이지 않았고 역무원 인원 감축으로 승강장 안전이 방치된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그런데 이 사고 책임을 물어 구로열차사무소 소속 기관사가 구속되었다.

    기관사 구속에 항의해 구로열차지부는 11월 20일 정오, 차장 비상총회를 개최해 준법운행 투쟁을 결의하고 당일인 20일부터 안전 수칙에 따른 ‘출입문 개폐시간 지키기’ 등의 방식으로 준법투쟁에 돌입하였다. 20~21일 양일간 지부 조합원 전원이 참여해 벌인 준법투쟁의 파급력은 컸다. 2일차에는 1시간 가까이 전동열차가 지연 운행되어 저녁 구로역에서는 승객들이 전동열차의 유리창을 깨는 등 원성과 항의가 폭발했다.

    21일 새벽 서울지방철도청장이 긴급 면담과 노사교섭을 제안해 열린 교섭에서 ‘곡선 승강장 안내원 배치, CCTV 확대, 형사처벌 철회와 구속자 조속 석방 철도청 적극 노력’ 등 지부의 요구안이 대부분 수용되어 준법투쟁을 마무리했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투쟁 경과
    결과와 의미

    1. 배경

    당시 수도권 전철은 말 그대로 ‘지옥철’이었다. 정원의 4~5배에 달하는 승객을 태우고, 차장 한 명이 40개의 출입문을 감당해야 했다. 사고 열차는 10량 편성이었으며 청량리역은 곡선 승강장이라, 차장실에서는 사고가 난 출입문이 보이지 않는 구조였다. 과거에는 승강장에서 역무원이 열차 감시를 했으나, 인력감축으로 이조차 없어진 상황이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차장들은 줄곧 인력 배치와 안전조치를 요구해왔지만, 철도청은 이를 묵살했다. 승객 안전에 대한 철도청의 무대책에 기인한 인재였다.

    2. 투쟁 경과

    • 청량리역에서 가방이 낀 상태로 전동열차가 출발해 승객이 사망함.

    • 운행 차장과 기관사, 역장의 경찰 조사 끝에 임 아무개 차장이 구속송치됨.

    • 구로열차지부(지부장 임도창)가 조합원 207명이 참가한 가운데 비상총회를 열고, 정오부터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준법운행을 결의하고 총회 이후에 안전운행 지시 철도청 공문 게시문에 각각 서명 날인함.

    • ‘전동열차 출발 시 운수 33510-1600에 의거, 승무 중 확인이 안될 경우 내려서 확인하라’는 철도청의 공문 지시대로 곡선구간의 출입문을 하나하나 육안으로 확인하고 승객 승하차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열차를 출발시키는 준법투쟁이 시작됨.

    • 준법투쟁 2일차, 전날에 비해 열차 출발 시간이 1분에서 5분 이상 늘어남. 이에 따라 2~3분에서 52분까지 열차가 연쇄적으로 지연되었고 평소 1시간 걸리던 청량리~인천구간은 최대 2시간까지 지연됨.

    • 저녁, 구로역에서 열차 지연에 분노한 수원행 승객들이 511열차 유리창을 깨는 등 항의 사태가 벌어짐. 평소 짐짝취급 받던 수도권전철 이용객들의 누적된 불만이 이날 열차 지연사태로 폭발함.

    • 승객 폭행사태 등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자 철도청이 요청해 서울지방철도청장 면담과 노사교섭이 열림. 교섭에서 ‘곡선 승강장 안내원 배치, CCTV 확대, 형사처벌 철회와 구속자 조속 석방 철도청 적극 노력’의 요구가 수용되어 준법투쟁을 종료함.

    • 서울지방철도청장에 대해 석방 노력 촉구, 구로승무지부 조합원 구속자 상대 1회 당 20~30명씩 집단 면회 투쟁을 지속함. ‘입건승무원 구제를 위한 개선안’이 지방본부 노사협의 의제로 상정, 채택됨.

    • 30일간 청와대 지시로 철도청 감사관실에서 사건 조사를 실시함. 조사내용은 ‘발생원인, 개요, 주도자와 배후세력 존재 여부, 감독기관의 대처와 조치여부’ 등이었고 조사 결과 ‘기관경고1, 인사조치 1명, 징계조치 1명(이후 인사조치로 변경), 개인경고 15명(차장 12명)의 조치를 내림. 한편 당시 전동열차 유사 사고가 빈번했던 관계로 언론에 2주간 집중 보도됨.

    3. 결과와 의미

    구로열차지부의 40시간에 걸친 안전확인 준법운행 투쟁 결과 ‘입건 승무원에 대한 구제대책 마련(이후 석방되고 무혐의 처분을 받음), 곡선승강장 안내원 배치(19명 배치), 운수 지시공문 철회, 승강장 조명시설 개선, CCTV 카메라 수리 및 설치’ 등의 요구가 대부분 수용되는 성과를 남겼다. 또한 수도권 전철의 출고업무와 안전시설 개선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합의를 어기고 철도청 감사담당관실은 구로열차사무소 승무원 23명에게 소환조사를 통보했다. 승객 항의 사태의 책임을 조합원들에게 돌리고 자신들은 빠져나가려는 의도였다.

    구로열차지부는 조합원 총회를 연일 개최하며 이를 거부했다. 지부는 ‘집단적으로 조사에 응하되, 단결을 유지하자’라는 의견을 모으며 대응했다. 한 달간의 조사에서 감사관들은 선동자와 배후세력을 추궁했지만, 조합원들은 항의 방문과 단호한 태도로 맞섰다. 최종적으로 모든 조사 대상자는 경고 조치로 마무리되었고, 구속됐던 기관사도 풀려났다.

    한편, 전국철도노조 본조와 서울본부는 지부에서 ‘너희들이 한 일이니 알아서 하라’며 이를 방관했다. 또한 사망사고로 촉발된 사회적 관심과 대책 마련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 인력과 안전에 대한 전국철도노조 차원의 대응과 투쟁이 요구되는 시기였음에도 노조는 이를 외면했다.

    ※ 참고자료

    - 구로열차지부, 「여객 사상사고 보고서」, 1900.11.17.
    - 수색지구안전운행실천연구팀, 『수색지구 안전운행실천투쟁보고서』, 2003.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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