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은 철도 기관사 파업 10시간 만에 전국의 농성장에 경찰을 투입하여 1,463명의 노동자를 연행, 파업을 종료시켰다. 11명이 구속되고 3명은 끝내 파면되었다. 하지만 이 파업은 한국전쟁 후 현장 철도노동자들에 의한 최초의 대중투쟁과 파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투쟁은 노사협조주의에 물든 무능한 어용노조의 본질을 폭로하며 어용노조의 투쟁 방해를 넘어 평조합원 중심으로 진행된 투쟁이었다. 투쟁 과정에서 투쟁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아 상향식 지도부를 구성하여 독자적 교섭에 이어 파업 결단과 실행까지 진행했다. 이러한 성격과 투쟁 방식은 이후 철도 민주노조 운동을 조직하는 기초가 되었다. 한편 기관차 직종만의 투쟁이었던 점, 수차의 지도부 교체로 인해 파업을 이끌 지도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이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1989년 5월 15일 전국기관차분회장협의회(약칭 전기협, 전국의 기관사 5,200여 명과 검수원 3,000여 명, 그 외 500여 명 등 총 8,700여 명으로 구성)를 설립하고 1989년 선거에서 투쟁에 등을 돌린 분회장들을 대거 낙선시켰다. 파면자 3명(김창한 특단추 위원장, 이태균 특단추 지도위원, 채주영 근로조건개선촉구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이후 대법원까지의 해고무효 소송을 통해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노동쟁의조정법에서는 공무원의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헌법소원을 통해 ‘공무원 파업권 제한은 헌법의 정신과 불일치하다’는 결정이 났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빼앗긴 철도노동자의 파업권을 되찾은 것이다.
한편 교통부는 파업 이후 실태조사를 진행해 8월 23일 “△ 노동시간 최고 18시간에서 14시간 이하로 조정 △ 정기휴일 부여 △ 근로기준법 적용한 수당 단가 인상” 등을 발표했으나 이는 실행되지 않았다. 1994년 전기협 파업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 참고자료
-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 『전노협백서』 제1권, 1997.
- 서선원, 「철도노동운동사」
- 이철의, 「파업투쟁으로 시작한 철도 민주노조 운동」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동운동 약사』, 2009.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한수균, 『낮과 밤이 없는 사람들 : 88.7.26 철도노동운동』, 코아기획, 1988.
- 이태균, 「철도에 봄이 스미기 시작한 88년 파업」,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김선수, 「열차 운전실 바닥에 신문 깔아야 했던 시절」, 『시사IN』 437호, 2016.2.4.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