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이브
  • 80대 사건
  • 연표
  • 철도노조
  • 오류신고
  • 1988년 40년 어용노조를 넘어, 1988년 기관사 파업

    1980년대 당시 사회 민주화 요구에 더해 ‘노동자 인간선언’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폭발했던 1987년 이후, 철도 현장에서도 살인적인 노동조건과 비인간적 대우를 철폐하기 위한 기관사들의 역사적 파업 투쟁이 전개되었다.

    철도청의 서울-부산 간 강제 직통운행 시도에 맞서 ‘근무시간 단축, 수당인상’ 등 핵심요구를 걸고 기관사들이 1988년 6월부터 자발적으로 농성과 집회를 진행했다. 기관사들은 어용노조의 통제를 뚫고 독자 조직을 만들어 교섭을 진행하다가 7월 26일 파업에 들어가 전국의 철도망을 멈춰 세웠다.

    이 투쟁은 비록 파업 10시간 만에 공권력의 탄압과 연행, 구속으로 해산을 당하고 3일 만에 종료되었으나, 이후 1994년 파업, 직선제 쟁취 투쟁으로 이어져 철도 민주노조 건설의 출발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파업 투쟁의 전개
    결과와 의미

    1. 배경

    전두환정권의 출범과 함께 등장한 최기덕 철도청장(해병대 사령관 출신)은 경영합리화란 명분으로 열차 운행시간 단축과 감원을 본격화하였다. 당시 철도 기관차 승무원들은 월 250시간에서 300시간에 이르는 살인적인 노동시간, 한겨울에 기관실 내에 얼음이 얼고 한여름에는 40도까지 올라가는 열악한 근무환경, 운전하며 식사하고 기관실 내에서 대소변을 해결했고, 졸음을 참느라 가루 커피를 입에 털어 넣으며 일했다. 그럼에도 근로기준법의 22%에 불과한 초과근무수당, 휴일수당, 야간수당을 받고 있었다. 또한 철도노동자들은 텃밭 가꾸기, 환경미화, 무보수 교육 등에 시달렸다. 직장은 상명하복식 군사문화에 찌들어 있었으니 철도노동자의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철도청은 대전 등 중간 기착지에서 교대로 승무하던 기관사들에게 1985년 11월부터 서울-부산 간 무궁화열차 직통 운행에 이어 1988년 초 통일호 직통 운행을 강제 시행했다. ‘다이어그램(Train diagram-열차운행표, 이하 다이아)’이 일방 변경되자, 기관사들의 근무조건은 인간으로서 견뎌낼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변경된 운행표에 따르면 기관사는 8시간 이상을 기관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 파업 투쟁의 전개

    • 마산기관차사무소를 시작으로 기관사들이 농성을 시작했다. 이에 당황한 전국철도노조가 6월 16일 위원장 주재로 서울 용산 노조 강당에서 전국 19개 기관차사무소 분회장, 전국철도노조 집행부, 운전분과위원, 철도청 기획관리실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철도노조 운전분과위원회를 개최했다. 전국에서 모인 200여 기관사들은 ‘△ 운전국 신설 △ 기관사 월 기본시간 192시간으로 제도화 △ 기관사 수당 100% 인상 △ 적성검사 폐지(부기관사 채용 시, 등용기관사 임용 시 제외) △ 직통 운전하는 무궁화호, 통일호 열차 도중교대’ 등 5개 요구를 정리하고, 전국철도노조 위원장에게 철도청과 특별 단체교섭을 벌여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 전국철도노조가 철도청과 ‘특별단체교섭협정서’를 체결했다. 협정서 내용에는 기관사들이 요구한 내용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기관사들은 재협상을 요구했다. 전국철도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400~500명의 조합원이 자연스레 농성에 돌입했다. 기관차분회장들은 농성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기관사들은 농성을 주도할 집행부로 ‘근로조건 개선촉구 추진위원회’를 따로 구성했다.

    • ‘근로조건 개선촉구 추진위원회’가 전국철도노조 집행부에 교섭권한을 위임하고 기관사들에게 농성을 풀고 해산할 것을 설득하다 잠적해버렸다. 기관사들은 내부토론회를 열어 특별단체교섭이 체결될 때까지 해산할 수 없다는 의견을 모으고 강당에서 농성을 계속 이어갔다.

    • 18시.  ‘근로조건 개선촉구 추진위원회’를 대신해 ‘특별단체교섭추진위원회’(약칭 특단추, 위원장 김창한, 부위원장 윤월봉, 기획담당 이수만, 홍보담당 이강남, 조사담당 이영중, 경비담당 송천일)를 구성했다. 특단추는 단체교섭안을 확정하고 철도청 대표, 전국철도노조 대표 그리고 특단추 대표가 참석하는 단체교섭을 제안했다.

    • 18시. 특단추 행동 지침을 발표해 전 승무원은 상의를 자유복으로 입으며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매일 12시와 18시 각 1분간씩 기적 취명을 한다”는 결의를 하고 태업에 들어갔다.

    • 15시. 서울, 부산, 영주, 대전, 제천, 경주, 익산 등의 기관사와 가족 2천여 명이 모여 ‘전국 철도 동지 및 가족 연합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기관사 부인과 가족 250여 명도 본청 앞 광장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철도청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농성이 일부 불순 세력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발표하며 생존권 보장 요구를 매도했다.

    • 23시. 교통부 중재로 특단추가 철도청, 전국철도노조와 3자 협상 끝에 협약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핵심 요구인 운전국 신설과 수당 지급 문제가 빠진 협약안을 농성 기관사들은 반대했다.

    • 새벽 1시 25분. 특단추의 파업 선언에 따라 전국의 기관차는 일시에 멈췄다.

      용산 농성장에 800여 명의 기관사가 모여 새로 ‘파업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파업 대책을 논의했다. 용산 농성장과 전국의 기관차사무소에 공권력이 전격 투입되었다. 서울 608명, 부산 214명, 순천 141명, 대전 115명 등 전국에서 1,463명의 기관사를 연행했다. 이 가운데 1,013명이 다음날 새벽 석방되었다.

    • 파업 3일째. 연행되었다가 석방된 기관사들이 업무에 복귀함에 따라 철도 운행이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공권력의 폭력 앞에 파업 조합원들은 복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3. 결과와 의미

    노태우 정권은 철도 기관사 파업 10시간 만에 전국의 농성장에 경찰을 투입하여 1,463명의 노동자를 연행, 파업을 종료시켰다. 11명이 구속되고 3명은 끝내 파면되었다. 하지만 이 파업은 한국전쟁 후 현장 철도노동자들에 의한 최초의 대중투쟁과 파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투쟁은 노사협조주의에 물든 무능한 어용노조의 본질을 폭로하며 어용노조의 투쟁 방해를 넘어 평조합원 중심으로 진행된 투쟁이었다. 투쟁 과정에서 투쟁 당사자들의 의견을 모아 상향식 지도부를 구성하여 독자적 교섭에 이어 파업 결단과 실행까지 진행했다. 이러한 성격과 투쟁 방식은 이후 철도 민주노조 운동을 조직하는 기초가 되었다. 한편 기관차 직종만의 투쟁이었던 점, 수차의 지도부 교체로 인해 파업을 이끌 지도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였다.

    이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1989년 5월 15일 전국기관차분회장협의회(약칭 전기협, 전국의 기관사 5,200여 명과 검수원 3,000여 명, 그 외 500여 명 등 총 8,700여 명으로 구성)를 설립하고 1989년 선거에서 투쟁에 등을 돌린 분회장들을 대거 낙선시켰다. 파면자 3명(김창한 특단추 위원장, 이태균 특단추 지도위원, 채주영 근로조건개선촉구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이후 대법원까지의 해고무효 소송을 통해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당시 노동쟁의조정법에서는 공무원의 파업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헌법소원을 통해 ‘공무원 파업권 제한은 헌법의 정신과 불일치하다’는 결정이 났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빼앗긴 철도노동자의 파업권을 되찾은 것이다.

    한편 교통부는 파업 이후 실태조사를 진행해 8월 23일 “△ 노동시간 최고 18시간에서 14시간 이하로 조정 △ 정기휴일 부여 △ 근로기준법 적용한 수당 단가 인상” 등을 발표했으나 이는 실행되지 않았다. 1994년 전기협 파업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 참고자료

    -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 『전노협백서』 제1권, 1997.
    - 서선원, 「철도노동운동사」
    - 이철의, 「파업투쟁으로 시작한 철도 민주노조 운동」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동운동 약사』, 2009.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한수균, 『낮과 밤이 없는 사람들 : 88.7.26 철도노동운동』, 코아기획, 1988.
    - 이태균, 「철도에 봄이 스미기 시작한 88년 파업」, 『철도노동조합 창립 60주년 기념자료집 ‘60년 걸어온 철길’』, 2005.
    - 김선수, 「열차 운전실 바닥에 신문 깔아야 했던 시절」, 『시사IN』 437호, 2016.2.4.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2』, 한내, 2026.


    수정할 내용 신고하기

    아카이브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 중 오류가 있는 경우, 노조에 알려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mail을 적어주시면, 반영후 답변드리겠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