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9월 26일 철도를 비롯한 금속·화학·교통·섬유·토건·출판·교통운수·연료·피복 등의 산업부문 노동자 대표 51명이 경성토건노조 사무실에서 회합하여 준비대표자회를 개최하였고 9월 28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준비위원회’를 조직했다.
‘전평준비위원회’는 전평을 결성하기 위해 10월 10일 18명의 조직책을 전국 13도에 파견했으며 조직 활동의 결과 10월 26일 전국의 조직된 노동자 21만여 명 이상을 대표한 산별노동자 대의원 515명이 서울에 모여 1945년 11월 1~4일에 16개의 전국적 산별노조를 결성했다.
1945년 11월 5~6일 경성(서울) 중앙극장에서 전평 창립대회가 진행되었다.
전평은 창립선언에서 “8.15 이후 전국 각 산업 중요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된 노동운동은 자연발생적·지역적·수공업적 혼합형의 조직체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므로 전국적으로 정연한 산업별적 조직으로 체계화·강력화시켜 … 여러 개의 산업별 단일노동조합이 총집결함”으로 설립 목적을 밝히고 “최저임금제, 8시간 노동제, 유급휴가제, 완전고용제, 사회보험제, 단체계약권, 언론·출판·집회·결사·시위·파업의 자유, 노동자의 공장관리, 노농동맹, 인민공화국 지지, 자주독립,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 등” ‘20개조 일반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이로써 해방 직후 ‘식민지 유산의 철폐, 생존권 보장, 정치·경제적 민주주의 확대’를 목적으로 아래로부터 노동대중의 분출하는 요구를 대변하는 가장 강력한 대중조직으로서 미군정의 반민중정책에 맞서나간 노동운동 조직이 탄생하게 된다.
전평은 철도·교통운수·금속·화학·섬유·식료·광산·어업·통신·전기·토건·조선·목재·출판·해원·일반봉급자 등 16개의 전국적 산업별 단일노동조합과 각 산업도시에 하부조직인 산업별 지부, 그 아래 1,194개의 분회가 속해 있었다. 서울·인천·대전·대구·부산·마산·군산·광주·목포·삼척·전주의 11개 도시에 지방평의회를 두고 그 지방의 산업별 지부를 총괄하도록 했다. 1946년 6월에는 8개(경기, 충남, 충북, 전남, 전북, 경남, 경북, 강원)의 도평의회를 설치하고 지방평의회를 소속시켰다. 1945년 11월 30일 평양에 결성된 전평 북조선총국은 1946년 4월 중순 이후 전평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북조선노동총동맹이 되었으며 5월 하순에 북조선직업총동맹으로 개편되어 독자적으로 움직였다.
전평은 전국 212여만 명의 노동자들 가운데서 10% 정도인 21만여 명이 참가하였고 불과 3개월 후인 1946년 2월 15일 시점에서는 235개의 지부 및 1,676개의 분회에 574,479명의 조합원을 포괄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같은 급속한 성장의 배경에는 미군정 아래 파탄난 생존권 보장에 대한 대중적 요구와 일제 강점기부터 지속된 노동운동과 독립운동(변혁운동)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전평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조직운영을 표방하였다. 1945년 11월에서 1946년 3월까지의 전평 조직의 운영자금은 90%가 조합비와 노동자들의 의연금이었고 8.6%가 부채였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대의원은 노동자대회나 조합원 총회에서 선출하고 그들이 집행위원을 선출하고 집행위원회가 결정한 의사를 평조합원에게 지시하는 민주집중제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였다.
※ 참고자료
- 안태정,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현장에서 미래를. 2002.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동운동 약사』, 2009.
-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 김무용, 『해방후 9월 총파업의 지역별 전개와 성격』, 역사연구 제8호, 아세아문화사, 2000.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1』, 한내,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