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산적색노동조합은 1936년 10월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인 이주하와 철도노동자 석표원·방용필·나창빈이 만나 비합법적 지도조직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으고 적색노동조합조직준비기관(준비기관)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적로반(赤勞班)→직장위원회→지역 적색노동조합위원회→전국 적색노동조합’ 순서로 노동운동을 조직하기로 하고, 우선 원산에서 금속·철도·화학 3개 부문으로 나눠 활동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1937년 원산에서 적로반이 순차적으로 결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철도 부문 적로반은 꾸준히 확장되었다. 적노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론적 모색을 넘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운동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철도에서 대우의 저하, 철도 합리화 정책에 따른 노력 강화, 노동자의 자각에 의한 해방 투쟁, 국내외 계급투쟁 운동 상황, 공산주의 사회’ 등을 주기적으로 토론했다. 1938년 5월 철도노동자 야유회 때 ‘주선인단’을 결성해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선전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일제가 전시체제로 이행한 이후 노동강도 강화와 물가 폭등으로 노동자 농민의 생활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즈음인 1937년 1월 원산 철도사무소에서 합리화를 명분으로 철도국 시간을 개정하려 하자, 파업을 조직하고 승급이나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인원 증가를 요구했다. 같은 해 5월과 11월에도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내건 진정서 제출과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적색노조 원산좌익위원회는 대중적인 친목 단체를 조직해 회원을 늘리고 점차 활동가를 양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각자 일터에서 활동했다. 그 결과로 1938년 7월 5일 철도노동자를 회원으로 하는 철우회(鐵友會)를 조직했다. 방용필을 위원장으로 하는 상임위원회를 조직해 홍성유·이재선·김지운·장국빈·허온·채용돌이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철우회는 기관지 『신호기』를 발행해 철도노동자 의식을 높이고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활용했다. 이 기관지는 1938년 6월부터 10월 사이 6호가 발간되었다. 또한 철도부문 활동가들은 독서회, 스포츠그룹 같은 단체를 조직해 노동자 대중을 만났으며,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승무원회·공우회(工友會)·기우회(機友會)와 각종 상호부조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