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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년 철도노동자가 중심이 된 원산적색노동조합운동

    1938년 원산에서 이른바 ‘원산적색노동조합사건’이 발생했다. 원산적색노동조합운동은 1930년대 철도노동자들이 주도해 벌어진 대표적 노동운동 사건이었다.

    원산적색노동조합운동은 본격적인 활동 이전에 발각, 와해되어 목적한 활동에 이르지 못했으나 당시 철도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경제적 이해 요구를 넘어 식민지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경과
    결과와 의미

    1. 배경

    1930년대 중반 이후 일본은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대륙으로 확산했고 식민지 조선은 전시동원 수탈체제로 재편되었다. 일제는 치안유지법 등을 동원해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을 폭압적으로 탄압했고 이 시기 노동운동은 일제 식민통치기구에 저항하는 폭력투쟁, 무장투쟁의 방식으로 전개되었고 식민지 해방을 내건 정치투쟁으로의 발전은 필연적이었다. 방식 또한 지하운동 형태인 비합법운동을 통해 전개되었다.

    2. 경과

    원산적색노동조합은 1936년 10월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자인 이주하와 철도노동자 석표원·방용필·나창빈이 만나 비합법적 지도조직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으고 적색노동조합조직준비기관(준비기관)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적로반(赤勞班)→직장위원회→지역 적색노동조합위원회→전국 적색노동조합’ 순서로 노동운동을 조직하기로 하고, 우선 원산에서 금속·철도·화학 3개 부문으로 나눠 활동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1937년 원산에서 적로반이 순차적으로 결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철도 부문 적로반은 꾸준히 확장되었다. 적노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론적 모색을 넘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운동으로 나아갔다. 이들은 ‘철도에서 대우의 저하, 철도 합리화 정책에 따른 노력 강화, 노동자의 자각에 의한 해방 투쟁, 국내외 계급투쟁 운동 상황, 공산주의 사회’ 등을 주기적으로 토론했다. 1938년 5월 철도노동자 야유회 때 ‘주선인단’을 결성해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선전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일제가 전시체제로 이행한 이후 노동강도 강화와 물가 폭등으로 노동자 농민의 생활이 위협받고 있었다. 이즈음인 1937년 1월 원산 철도사무소에서 합리화를 명분으로 철도국 시간을 개정하려 하자, 파업을 조직하고 승급이나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인원 증가를 요구했다. 같은 해 5월과 11월에도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내건 진정서 제출과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적색노조 원산좌익위원회는 대중적인 친목 단체를 조직해 회원을 늘리고 점차 활동가를 양성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각자 일터에서 활동했다. 그 결과로 1938년 7월 5일 철도노동자를 회원으로 하는 철우회(鐵友會)를 조직했다. 방용필을 위원장으로 하는 상임위원회를 조직해 홍성유·이재선·김지운·장국빈·허온·채용돌이 상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철우회는 기관지 『신호기』를 발행해 철도노동자 의식을 높이고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활용했다. 이 기관지는 1938년 6월부터 10월 사이 6호가 발간되었다. 또한 철도부문 활동가들은 독서회, 스포츠그룹 같은 단체를 조직해 노동자 대중을 만났으며,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승무원회·공우회(工友會)·기우회(機友會)와 각종 상호부조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 철도노동자 석표원, 방용필, 나창빈 적색노동조합준비기관 조직

    • 방용필, 2개의 철도 적로반 결성

    • 방용필, 유유록, 기익형의 반이 철도위원회로 승격

    • 방용필이 발굴한 김광인이 1개의 적로반 결성. 방용필이 석유회사 노동자 이영훈, 전태범과 적로반 결성

    • 이주하, 방용필, 유유록이 적색노동조합 원산좌익위원회 결성

    • 원산좌익위원회 중앙위원회에서 총책임 겸 화학부문 책임 방용필, 철도부문 책임 유유록, 금속부문 책임 김려섭을 선임함.

    • 철도노동자 야유회 때 ‘주선인단’ 결성

    • 철우회 기관지 ‘신호기’ 발행, 10월까지 6호 발행

    • ‘철우회’ 결성. 상임위원장 방용필, 상임위원 유유록 외 7명, 조직부 부장 유유록 외 14명, 선전부 부장 이재영 외 8명, 총 28명 선임

    • 유유록이 1개의 적로반 결성

    • 원산경찰의 일제 단속으로 주동자 검거

    3. 결과와 의미

    110명이 체포되어 70명이 검사국에 송국된 이른바 ‘원산적색노동조합 사건’은 국민정신총동원운동으로 사상전향자가 속출하고 사상 사건이 뜸해져 안심하고 있던 일제에 일대 충격을 안겼다. 검거된 110여 명의 운동가 중 1심 판결을 받은 이는 41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노동자가 33명이었다. 이들 33명 중 철도 부문 노동자가 23명이었다.

    목적한 활동에 앞서 일제의 대량 검거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철도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원산적색노동조합운동은 일제 당국이 중일전쟁기 “후방에서 발생한 최대의 교란사건”이라 부를 정도로 규모가 있었고 조직적이었다. 당시 철도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이 경제적 이해 요구를 넘어 식민지 해방과 새로운 사회 건설을 내걸고 일제 권력에 대항하는 투쟁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 참고자료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일제강점기 경성지방법원 기록 해제’ (https://db.history.go.kr/modern/level.do?levelId=gsdc_002_2580)
    -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https://archive.history.go.kr/record/catalog/catalogView.do)
    - 김경일, 『일제하 노동운동사』, 창작과 비평사, 1992.
    - 안태정, 「1930년대 원산지역의 혁명적 노동운동(1930∼1938)-조직건설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역사연구회, 『역사와 현실』 2호, 1989.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1』,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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