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작창 민영화 반대 투쟁은 2년간에 걸친 투쟁 끝에 1969년 11월 14일 항의 집회에서 인수 추진 기업인 한국기계(주)의 확약을 받아냄으로써 마침내 민영화 철회로 마무리되었다.
인천공작창 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은 당시 전국철도노조의 투쟁이라기보다는 인천공작창에 근무하고 있는 800여 조합원들의 투쟁이었다. 인천공작창 조합원들은 이미 1968년 11월부터 자발적 항의 집회를 통해 투쟁을 시작했고 그 힘으로 전국철도노조를 추동해 대책기구를 만들도록 했다. 하지만 전 조직 차원으로 투쟁이 확대되지 못하고 인천공작창의 조합원들만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투쟁 대상도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던 철도청이 아니라 불하받으려는 한국기계(주)에 한정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결국 1980년대 초 기차 생산은 현대정공, 대우중공업 등 민간기업으로 이관되었으며 1983년 11월 10일 인천공작창은 대전정비창에 흡수 통합되어 폐창되었고, 근무하던 조합원들은 대부분 대전공작창으로 전보되었다.
※ 참고자료
- 『중앙일보』, 1969.05.24.
- 『철노 50년사』, 철도노조, 1997.
- 『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단체 사전편찬을 위한 기초연구조사보고서』(정부수립 이후~1969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3.
- 김영수, 『철도공무원노동자의 공공성과 생활세계』, 한내, 2015.
-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1』, 한내,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