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쿠데타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제반 상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군사정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 하에서 크게 확장되었던 제반 민주주의 권리와 요구를 무력으로 짓밟고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조치는 1961년 5월 19일에 발표된 계엄사령부 공고 제5호 ‘경제질서 회복에 관한 특별성명서’로, “노임은 5월 15일의 수준으로 유지하고 노동쟁의는 일절 금지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5월 21일, 군사정부는 ‘포고령 제6호’를 통해 노동조합을 포함한 모든 정당·사회단체들의 즉각적인 해체를 명령했다. 그리고 8월 3일,‘ 사회단체 등록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노동단체의 역할을 “노동조건의 개선”과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자율적인 경제조직으로 한정함으로써, 노동단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아울러, 같은 날 군사정부는 ‘근로자의 단체활동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공포하여 기존의 노조 설립에 있어서 ‘신고주의’를 사실상 ‘허가주의’로 전환시켰다. 또한 8월 4일 보건사회부 장관은 ‘근로자의 단체활동에 관한 임시조치법 공포에 제하여’라는 담화문을 통해, 향후 노동조합의 재편은 “전국 단일 산별노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표명함으로써 복수노조 체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1961년 5·16으로부터 8월 초순까지 취해진 군사정부의 노동조합 관련 정책의 핵심은 ‘기존 노동조합의 해체, 산별체제로의 재편, 정치활동의 금지, 복수노조의 금지’ 등으로 압축되었다. 이와 같은 정책은 1963년 ‘노동조합법’, ‘노동쟁의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개정을 통해 박정희 군사정부가 설계한 노동조합 체제로 법적 완성을 이루게 된다.
한편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로 인해 기존 노동조합들은 강제로 해체되었고 이에 불만을 표명한 노조 지도자들은 체포·구속되었다. 이로써 4·19 직후 크게 활성화되었던 민주적 노동운동은 국가 통제에 따라 활동이 중단되었다. 그 자리를 중앙정보부 주도 아래 만들어진 한국노총 총연합단체와 11개 산별노조가 메웠는데, 군사정부는 이들 조직에 자유당 정권 시절 준국가기구의 역할을 했던 ‘관제 어용노조’의 역할을 또다시 강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