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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 설립과 열차 안전운행 준법 투쟁

    4.19혁명의 영향으로 1960년, 철도노동조합연맹의 부패와 어용성을 비판하는 세력이 등장했다. 새로운 민주노조 활동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기관사들이 중심이 된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이 8월 5일 창립대회를 열고 출범했다. 창립 초기 2,300여 명의 조합원이 가입한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은 노보 발행 등 조합원 사업을 통해 조직력을 갖추고 철도청과 교섭을 진행했다. 9월 30일 열차 안전 운행 준법 투쟁을 통해 교통부에 제시한 5대 요구사항을 관철시켰으며, 연가보상금 지급에 대한 요구 투쟁을 연이어 전개했다. 이후 철도청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5·16쿠데타 이후 소멸되었다.

    목차
    처음으로
    배경
    주요 활동
    결과와 의미

    1. 배경

    4·19혁명 이후 사회 민주화 흐름 속에서 기존 철도노동조합연맹을 ‘이승만과 자유당에 부역한 부패단체이자 노동 귀족들의 집합소’라 규정하는 철도노동자들이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을 건설했다. 이들은 어용 철도노동조합연맹을 대체할 조직으로, 철도 현장에서 공통의 노동조건으로 단결이 용이한 직능별 노동조합이 적합하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기관사 중심의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을 우선 결성하고 이후 운수, 검차, 시설, 전기, 공작계에 직능별 노동조합을 결성해 자율적 노조 활동을 전개하며, 종국에는 연합단체로 ‘한국철도노동조합협의회’를 구성해 사용자와 정부를 상대하자는 조직화 경로를 계획했다.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은 이를 노보를 통해 공개 제안했다.

    이에 철도노동조합연맹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 해체를 목적으로 창립대회장 난입, 활동 방해와 악선전 등을 지속했다. 당시 철도노동조합연맹의 입장은 전국철도노조가 발행한 백서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4·19 과도기에 싹튼 자유방임의 그릇된 풍조는 한동안 그늘 속에서 서식하던 사회 각 분야의 수많은 단체를 잉태케 하였다. … 항상 조합 운영에 불만을 품어오던 몇몇 승무원 출신자에 의하여 획책된 소위 ‘기관차노동조합’은 전국적인 조직을 도모하고 ‘검은 사자들이여 뭉쳐라’라며 승무원들을 선동하였다. 이에 동조하는 일부 승무원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에 철노를 탈퇴하여 기관차노조에 가입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둘러싼 조직의 반목과 갈등은 화기로운 직장의 분위기마저 흐리게 하였다.”

    2. 주요 활동

    열차 운행 도중 각종 인명 사상 사고가 빈번했는데 이에 대한 책임을 기관사들에게 전가해 처벌해온 것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었다. 1960년 8월까지 8개월 동안 688명에 달하는 인원의 열차 사상 사고가 발생하였고 1,500명 이상의 기관차 승무원이 업무상 과실 죄목으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9월 13일 서울역으로 향하던 기관차에 무단횡단하던 2명이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 기관사와 기관조사가 구속수감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9월 30일 열차 안전 준법투쟁이 촉발되었다. 노동조합은 회의를 열어 즉각 투쟁을 결의하고 9월 30일 △ 선로와 정거장 구내의 무단통행을 일절 금지할 것 △ 선로 연선의 불법·위법적 건조물을 일체 철거할 것 △ 선로통행인의 역 사상 사고는 피해자의 과실로 인정할 것 △ 역 사상 사고의 업무상 과실 혐의 사건은 불구속으로 취조할 것 △ 형법에 따른 조사 시간은 근무의 연장으로 인정할 것 등 5대 요구사항을 내걸고 4시간 넘게 열차 서행 투쟁을 벌였다. 마침내 교통부 당국으로부터 “구속기관사를 석방하고 불가항력적 사상 사고 시 무혐의 처리한다”는 합의를 받음으로써 신분을 보장받게 된다. 이후 10월 7일 정부 국무회의에서는 ‘열차운행 기관사 보호 내용’이 의결되었다.

    또한 연가보상금 지급 요구 투쟁을 벌였다. 이 투쟁은 1960년 초에 예산을 책정하여 지급하기로 결정된 연가 미사용자에 대한 휴일근무수당을 1960년 12월 30일에 교통부가 일방적으로 지급대상자를 줄여서 지급액을 삭감한 것에 항의해 발생했다. 노동조합은 1961년 1월 6일에 교통부 노동협의회 개최를 요구해 이틀 동안 협의를 진행했고, 연가보상은 노동조합의 요구(지급액 삭감을 시정하고 지급 범위도 본부 직원만을 제외한 전체 노동자들에게 해당하도록 함)에 따라 그대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3. 결과와 의미

    안전 운행 준법투쟁의 성공적인 마무리 이후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은 노보 발행 등 조합원 사업과 함께 교통부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활동을 진행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렇게 조합원을 위한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결성 초기 2,300여 명의 조합원은 이듬해인 1차 정기대의원대회 무렵 3,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의 포고령에 따라 강제 해산 명령을 받게 되었다. 또한 전국철도노조가 철도청과 체결한 유니언숍제도를 악용해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을 공격해 왔다. 이에 조합원이 급감하게 되어 1961년 하반기에 사실상 해체 상태에 이르게 된다. 한국철도기관차노동조합은 1963년 2월 18일 재차 노동조합을 결성(위원장 손진규)했으나 개악된 노동법(복수노조 금지)을 악용한 한국노총과 전국철도노조의 고소고발로 인해 위원장 구속과 함께 불법 노동단체로 규정되었다. 재건은 최종적으로 실패했다.

    ※ 참고자료

    - 손진규, 『철로의 기사 : 어느 노동조합 얘기』, 이명문화사, 1964.
    김병구·지영근, 『만화로 보는 철도 이야기: 철도노동운동사』, 갈무리, 2017.
    서선원, 「철도노동운동사」
    한수균, 『낮과 밤이 없는 사람들 : 88.7.26 철도노동운동』, 코아기획, 1988.
    전국철도노동조합, 『철노 50년사』, 1997.
    전국철도노동조합 역사편찬위원회, 『철도노조 80년사 1』, 한내,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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